부산 영도에 위치한 흰여울교회입니다.

신앙의 자리/신학마당 78

살아나신 예수님과 일으켜지신 예수님

주간 평화교회 101호| 살아나신 예수님과 일으켜지신 예수님 그리스도교의 가장 큰 절기를 꼽으라면 누구라도 주저 없이 부활절을 꼽을 것이 분명하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부활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 진리이자 그리스교라는 종교 전체를 지탱하는 주춧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를 들어 사도행전은 당시 그레코로만 문화의 핵심 근거지인 아테네를 방문한 바울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그의 전도의 결말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여 보도한다. “그리고 몇몇 에피쿠로스 철학자와 스토아 철학자도 바울과 논쟁하였는데 그 가운데서 몇몇 사람은 ‘이 말쟁이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려는 것인가?’ 하고 말하는가 하면 또 몇몇 사람은 ‘그는 외국 신들을 선전하는 사람인 것 같다.’ 하고 말하기도 하였다. 그것은 바울이 예수를 ..

[생활 성서] 내일도 살아있을 거라는 착각

주간 평화교회 100호| 내일도 살아있을 거라는 착각 성경 말씀 :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신 90:10) 어느 날 아들에게 책을 읽어주는데 ‘꼬부랑 할머니’(?)가 사진으로 실려 있었습니다. 어느 농촌 마을 풍경을 다룬 책이었는데요. 그 할머니는 깊게 패인 주름투성이로 마당에 쭈구리고 앉아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주름의 개수와 깊이가 놀라울 정도였습니다만 그래도 밝은 표정으로 즐겁게 일하시는 모습에 포근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문제는 제 아들이었는데요. 아들은 많이 놀란 것 같았습니다. 그런 할머니는 처음이었거든요. 아들이 항상 할머니, 하고 부르며 매일 만나는 분은 금년에 막 환갑이 되신, (요즘에는 할머니로 안 ..

<영적여정의 오솔길> ‘어둠’의 성인

주간 평화교회 99호| ‘어둠’의 성인 1. 십여 년 전쯤에 어떤 포럼에 참석했다고 들었던 이야기이다. 모 신학대학 교수가 “마더 데레사는 신앙 없이 죽었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했다.”라는 말을 공개적인 자리에서 했다. 나름 한국에서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신학교에 소속된 교수의 공개적 발언은 자못 충격적이었다. 그 발언을 듣고 나서 이런 일련의 질문이 계속 떠올랐다. 20세기의 성인이라고 일컬어지는 마더 데레사의 구원 문제를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일까? 구원에 대한 문제는 전적인 하나님의 소관인데 그 교수는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된다는 생각일까? 개신교의 구원에 대한 교리적 신념이 다른 사람의 구원 문제를 마음대로 판단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 2. 그 교수는 자신의 이야기가 마더 데레사의 편지에 나온..

기다림의 이름

주간 평화교회 98호| 기다림의 이름 그리스도교의 여러 개신교 교단 중 감리교는 그 명칭의 유래가 독특하다. 영국에서 생겨난 감리교의 신자를 가리키는 영어단어는 Methodist인데, 이 단어는 짐작대로 method와 관련되어 ‘방법을 따르는 사람’ 또는 ‘규칙을 따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감리교인이 이렇게 불리게 된 까닭은 창시자 존 웨슬리가 옥스퍼드 대학에서 강의하던 시절 활동했던 신성회(Holy Club)와 관련이 있다. 활발한 사회선교도 실천했던 신성회의 멤버들은 지나치게 열성적이고 규칙적이며 철저했던 경건생활로 인해 주위로부터 질시와 조롱을 받았다고 한다. 이때 대표적인 조롱의 말이 바로 methodist였다. 조롱의 의미였기에 methodist는 ‘규율을 잘 따르는 사람’ 같은 긍정적이거나 ..

회개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웹진 평:상 69호] 평.보.성 | 회개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누가복음 13:1~9) 1 바로 그 때에 몇몇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을 학살해서 그 피를 그들이 바치려던 희생제물에 섞었다는 사실을 예수께 일러드렸다. 2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런 변을 당했다고 해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3 그렇지 않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망할 것이다. 4 또 실로암에 있는 탑이 무너져서 치여 죽은 열여덟 사람은 예루살렘에 사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죄를 지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 5 그렇지 않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망할 것이다." 6 예수께서는..

[주일·예배⑨] 안식일이 아니라 주일

역사는 우리에게 주일과 안식일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한다. 역사를 돌아보면,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들이 지켰던 안식일의 그 엄격함과 복음의 자유를 주장했던 바울의 생각 사이를 오갔다. 2천 년의 역사를 이렇게 단순하게 요약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일지 모르지만, 예배일로서의 일요일, 또는 주일은 사회적 변동에 큰 영향을 받았다. 신앙이 권력이 되고 교권이 국가적 권력이 될 때마다 주일은 예배의 날에서 안식의 날로, 아니, 다른 말로 하면 억압의 날로 변하곤 했다. (본문 중) 조성돈(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목회사회학) 바울을 지나면 성경 시대에서 교회사의 시대로 넘어온다. 이 시대의 가장 큰 특징은 유대 그리스도인들과의 단절이다. 이 시대부터 기독교는 유대교의 아류가 아니라 전혀 다른 종교를 추구하게 되..

[주일·예배⑧] 복음이 주는 자유, ‘첫날’

바울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 결코 ‘어떤 날’이 중요하지 않다. 창조주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날이 다 거룩하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으로 신앙을 지키려 하는 것은 단지 그림자를 잡으려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실체가 되신 그리스도를 경험하는 것이다. (본문 중) 조성돈(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목회사회학) 바울을 중심으로 하는 기독교 디아스포라 공동체들은 유대교식 안식일 규정을 넘어섰다. 그들은 먼저 날(Day)에 대한 규정을 바꾸었다. 이스라엘 특유의 날을 세는 방식을 따라 7번째 되는 날을 안식일로 지키던 것을 바꾸어, 주간의 첫날, 또는 안식 후 첫날을 모임의 날로 규정했다. 이날 이들은 모여서 “떡을 떼었다.” 이날을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지키듯 아무것도 안 하는 날로 지킨 것이 ..

[주일·예배⑦] 디아스포라의 예배일, ‘안식 후 첫날’

안식일 논쟁의 내용은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먼저는 날(day)에 관한 것이다.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저녁까지 지키는 것과 관련된 문제다. 그리고 두 번째는, 그날에 무엇을 했느냐의 문제이다. 세부 내용을 아래에서 차근차근 정리해 보고자 한다.(본문 중) 조성돈(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목회사회학) 복음서의 시기를 지나면서 기독교는 디아스포라 상황을 맞이한다. 유대 사회를 벗어나서 이방인들의 사회에서, 즉, 로마의 지배를 받으며 로마의 문화권 안에서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바울을 중심으로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와 유대적 전통과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하는 과제를 떠안았다. 유대 사회 안에서 유대인들만으로 시작된 기독교는 이제 로마 사회 안에서 이방인들을 포함하는 공동체가 되..

[주일·예배⑥] 안식일의 의미(3): 예수와 안식일

인간을 위해 시작된 안식일이 인간을 얽어매고, 그를 사탄에게 매이게 하는 날이 되었다. 그물에 매인 짐승이 도망가기 위해 몸부림을 치면 칠수록 그 그물이 더 옥죄어 오듯이, 안식일은 어느덧 인간을 옭아매는 그물이 되고 올무가 되었다. 안식일의 규정은 점점 더 세분화 되고 구체화 되어 사람들이 피할 곳이 없게 되었다. 결국 ‘안식’의 날은 율법의 날이 되었다.(본문 중) 조성돈(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목회사회학) 예수님에게 안식일은 늘 논쟁의 초점이었다. 복음서에 안식일이 등장할 때마다 예수님과 충돌이 일어난다. 예수님과 맞서는 이들은 때로는 바리새인이나 서기관이었고, 때로는 회당장이나 심지어 고향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안식일을 두고 예수님과 끊임없이 논쟁을 벌였다. 그 논쟁의 의도가 예수님을 얽어매어..

[주일·예배⑤] 안식일의 의미(2): 안식일에서 예배일로

회당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안식일에 행할 종교 의례를 만들어 낸 것이다. 사람들 가까운 곳에, 성인 남성 10명 이상이라는 공동체를 기반으로 하여, 제사가 아닌 말씀 중심의 의례가 생긴 것이다. 그런 접근성 덕분에 사람들은 이제 안식일마다 종교 기관인 회당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제사가 사라지니 제사장이나 왕족이라는 특권 계층이 지배할 수 없었다. 그들 대신에 ‘누구나’ 예전의 중심이 될 수 있었다. 이로써 안식일은 그냥 쉬는 날이 아니라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날이 되었다. (중략) 안식일은 이제 그들의 날이 아니라 우리의 날이 되었다.(본문 중) 조성돈(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목회사회학) 안식일은 노동을 쉬는 날이다. 이날을 쉬는 것은 7일의 리듬에서 하루를 온전히 하나님께 드린다는 믿음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