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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3. 28 말씀, 그리고 하루

열왕기상 19:11-12 크고 강한 바람이 주님 앞에서 산을 쪼개고, 바위를 부수었으나, 그 바람 속에 주님께서 계시지 않았다. 그 바람이 지나가고 난 뒤에 지진이 일었지만, 그 지진 속에도 주님께서 계시지 않았다. 지진이 지나가고 난 뒤에 불이 났지만, 그 불 속에도 주님께서 계시지 않았다. 그 불이 난 뒤에, 부드러운 산들바람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요한복음 3:7-8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내가 말한 것을 두고 놀라지 마라.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는 듣지만, 바람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모른다.” 하나님,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보여주신 이후로 우리는 더 이상 사람들이 열광하는 사건 속에서 당신을 찾지 않습니다. 그..

[주일·예배⑨] 안식일이 아니라 주일

역사는 우리에게 주일과 안식일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한다. 역사를 돌아보면,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들이 지켰던 안식일의 그 엄격함과 복음의 자유를 주장했던 바울의 생각 사이를 오갔다. 2천 년의 역사를 이렇게 단순하게 요약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일지 모르지만, 예배일로서의 일요일, 또는 주일은 사회적 변동에 큰 영향을 받았다. 신앙이 권력이 되고 교권이 국가적 권력이 될 때마다 주일은 예배의 날에서 안식의 날로, 아니, 다른 말로 하면 억압의 날로 변하곤 했다. (본문 중) 조성돈(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목회사회학) 바울을 지나면 성경 시대에서 교회사의 시대로 넘어온다. 이 시대의 가장 큰 특징은 유대 그리스도인들과의 단절이다. 이 시대부터 기독교는 유대교의 아류가 아니라 전혀 다른 종교를 추구하게 되..

[주일·예배⑧] 복음이 주는 자유, ‘첫날’

바울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 결코 ‘어떤 날’이 중요하지 않다. 창조주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날이 다 거룩하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으로 신앙을 지키려 하는 것은 단지 그림자를 잡으려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실체가 되신 그리스도를 경험하는 것이다. (본문 중) 조성돈(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목회사회학) 바울을 중심으로 하는 기독교 디아스포라 공동체들은 유대교식 안식일 규정을 넘어섰다. 그들은 먼저 날(Day)에 대한 규정을 바꾸었다. 이스라엘 특유의 날을 세는 방식을 따라 7번째 되는 날을 안식일로 지키던 것을 바꾸어, 주간의 첫날, 또는 안식 후 첫날을 모임의 날로 규정했다. 이날 이들은 모여서 “떡을 떼었다.” 이날을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지키듯 아무것도 안 하는 날로 지킨 것이 ..

[주일·예배⑦] 디아스포라의 예배일, ‘안식 후 첫날’

안식일 논쟁의 내용은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먼저는 날(day)에 관한 것이다.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저녁까지 지키는 것과 관련된 문제다. 그리고 두 번째는, 그날에 무엇을 했느냐의 문제이다. 세부 내용을 아래에서 차근차근 정리해 보고자 한다.(본문 중) 조성돈(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목회사회학) 복음서의 시기를 지나면서 기독교는 디아스포라 상황을 맞이한다. 유대 사회를 벗어나서 이방인들의 사회에서, 즉, 로마의 지배를 받으며 로마의 문화권 안에서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바울을 중심으로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와 유대적 전통과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하는 과제를 떠안았다. 유대 사회 안에서 유대인들만으로 시작된 기독교는 이제 로마 사회 안에서 이방인들을 포함하는 공동체가 되..

[주일·예배⑥] 안식일의 의미(3): 예수와 안식일

인간을 위해 시작된 안식일이 인간을 얽어매고, 그를 사탄에게 매이게 하는 날이 되었다. 그물에 매인 짐승이 도망가기 위해 몸부림을 치면 칠수록 그 그물이 더 옥죄어 오듯이, 안식일은 어느덧 인간을 옭아매는 그물이 되고 올무가 되었다. 안식일의 규정은 점점 더 세분화 되고 구체화 되어 사람들이 피할 곳이 없게 되었다. 결국 ‘안식’의 날은 율법의 날이 되었다.(본문 중) 조성돈(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목회사회학) 예수님에게 안식일은 늘 논쟁의 초점이었다. 복음서에 안식일이 등장할 때마다 예수님과 충돌이 일어난다. 예수님과 맞서는 이들은 때로는 바리새인이나 서기관이었고, 때로는 회당장이나 심지어 고향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안식일을 두고 예수님과 끊임없이 논쟁을 벌였다. 그 논쟁의 의도가 예수님을 얽어매어..

[주일·예배⑤] 안식일의 의미(2): 안식일에서 예배일로

회당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안식일에 행할 종교 의례를 만들어 낸 것이다. 사람들 가까운 곳에, 성인 남성 10명 이상이라는 공동체를 기반으로 하여, 제사가 아닌 말씀 중심의 의례가 생긴 것이다. 그런 접근성 덕분에 사람들은 이제 안식일마다 종교 기관인 회당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제사가 사라지니 제사장이나 왕족이라는 특권 계층이 지배할 수 없었다. 그들 대신에 ‘누구나’ 예전의 중심이 될 수 있었다. 이로써 안식일은 그냥 쉬는 날이 아니라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날이 되었다. (중략) 안식일은 이제 그들의 날이 아니라 우리의 날이 되었다.(본문 중) 조성돈(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목회사회학) 안식일은 노동을 쉬는 날이다. 이날을 쉬는 것은 7일의 리듬에서 하루를 온전히 하나님께 드린다는 믿음의 ..

[주일·예배④] 안식일의 의미(1)

안식일의 중요한 의미는 피조물에 대한 배려이다. 고대 사회에서 7일마다 하루를 온전히 쉴 수 있다는 것은 획기적인 일이다. 당사자인 ‘너’와 그 자녀들까지, 그리고 그 종들까지도 쉼을 얻게 된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안식의 범위가 가축에게까지 이어진다는 점이다. 안식일 계명은 인간을 넘어 피조물에 대한 배려로 나아간다. 심지어 안식년에 이르러서는 땅으로까지 배려의 대상이 확장되는 것을 보면, 생명체를 넘어 모든 창조물에 대한 배려가 이 계명에 포함됨을 알 수 있다.(본문 중) 조성돈(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목회사회학) 유대인들에게 안식일은 절대적인 율법이다. 그들은 모든 일상과 구별하여 안식일을 특별히 지켰다. 디아스포라 상황에서 이러한 규칙은 때로 경제적 어려움을 주었고, 생활의 리듬이 다른 그들..

[주일·예배③] 안식의 날과 예배의 날

온라인 예배가 들어오고 안식의 날이 하나로만 정해질 수 없는 상황에서 주일만을 예배의 날로 규정해 버린다면, 그것도 한계를 가지게 된다. 자칫하면 주일에 예배드리지 못하는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예배에 참여할 권리 자체를 빼앗아 가는 불의가 될 수도 있다. 지금도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교회당에서 드리는 예배에는 정해진 소수만 참여할 수 있는데, 그러면 그 참여자에 들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주일성수가 인정될 수 없는 것인지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본문 중) 조성돈(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주일예배는 우리의 신앙 전통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신앙생활에서 제거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간다면 가장 마지막에 남을 것이 주일예배일 것이다. 특히 한국교회 교인들의 의식 속에서는 주일예배가 신앙생활의 ..

[주일·예배②] 그들이 떠나고 있다

지금 중형 교회에서 사라진 이들은 밀레니얼 세대로 분류되는 X-세대와 Y-세대이다. 교회에 30대와 40대가 없다는 말은 이들의 자녀인 청소년과 아이들도 없다는 의미이다. 결국 교회의 미래가 없다. 50대 이상 어른들만 자리하고 있는 한국교회는 고사(枯死)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말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위기에 대한 경각심이 한국교회에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모두가 걱정은 한다. 다음 세대가 없다고 한탄을 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 그런 마음이 있는지, 이 위기에 대해 진정한 두려움이 있는지를 살펴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본문 중) 조성돈(실천신학대학원대학원 교수, 목회사회학) 3년 전, 중형 교회에 대한 조사를 진행한 적이 있다. 대략 교인 수 500~1,000명 사이의 교..

[주일·예배①] 뉴노멀의 예배

성도들은 교회에 관하여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현장 예배가 없는데 예배당이 필요한 것인지, 정부가 예배를 중지시킬 수 있는 것인지, 교회는 정부가 명령한다고 예배를 온라인으로만 드리는 것이 옳은지. 정말 끝없는 질문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질문이 이어지는 것은, 긍정적으로 본다면 이제 성도들이 교회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 생겼다고 볼 수도 있고, 부정적으로 본다면 교회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을 품게 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본문 중) 조성돈(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목회사회학) 코로나 시대가 되면서 우리는 뉴노멀을 말했다. 일상 또는 일반을 이야기하는 노멀이 새로워진다는 이 뜻은 결국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했다. 그 동안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했던, 그리고 상상도 해 보지 못했던 일들을 요즘 우리는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