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우리의 구원 문제에 아쉬운 게 없으신 분입니다.
우리의 영혼 문제는 현실적으로 우리의 발등에 떨어진 불입니다.
구원을 얻지 못하면 우리는 지옥 불 못에서 영원히 형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 책임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런 책임이 없으십니다.
그런데 마치 하나님이 아쉬운 것처럼 애타는 심정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구원 문제를 놓고 고민하고 하나님께 매달렸더니 그런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구원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구원이 무엇이고 죄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지내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우리의 구원에 친히 개입하셨습니다.
그 아들을 직접 죽이실 만큼 하나님께는 우리의 구원 문제가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본래 용서를 구하는 조건으로 희생을 치러야 한다면 아쉬운 정도가 심할수록 더 큰 희생을 감수할 것입니다.
사이가 서먹서먹해진 친구에게 말을 걸기 위해서 콜라 한 잔을 권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경우에 화해를 얻기 위해서 콜라 한 잔 만큼 희생한 것입니다.
이처럼 화해를 얻는 것이 자기에게 어느 만큼 심각한 문제냐에 따라서 희생할 수 있는 폭도 커질 것입니다.
조선 인조 때 병자호란이 있었습니다.
당시 조정은 남한산성으로 피신해서 완강히 저항하노라고 했지만 우리나라의 국력과 청나라의 국력을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입니다.
결국 45일 만에 항복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항복 조건 중의 하나가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볼모로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치욕을 감수하면서라도 항복을 얻어야 할 만큼 청나라와 화해하는 것이 절실한 과제였습니다.
청나라와의 화해를 얻어내지 못하면 종묘사직을 보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들을 인질로 보내는 것이 아버지로서는 차마 동의할 수 없는 조건이었겠지만 별수 없었습니다.
당시 조선의 입장으로는 청나라가 이보다 더 심한 조건을 요구했어도 수락했을 것입니다.
만일 청나라가 “우리 청나라의 왕자를 볼모로 보낼 테니 제발 항복하십시오. 항복을 하지 않고 계속 버티면 조선은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항복 요구를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우리는 조선을 위해서 무엇이든지 다 하겠습니다” 하고 요청했다면 그것은 분명히 코미디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그런 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런 일을 하셨습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정작 아쉬운 입장에 있는 우리는 가만히 있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아들까지 죽이시면서 우리와의 화해를 모색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이 어느 만큼 절실하게 필요한 문제인지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으시고 우리에게 구원받을 만한 자격이 어느 만큼 있는지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시지 않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마음에 동참하기를 원한다면 우리 역시 우리에게 어떤 잘못을 범한 사람이 있을 때, 그 사람에게 용서를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지의 여부를 따지기 전에 먼저 적극적으로 용서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지금 당장 용서하지 않으면 자기에게 큰일이 날 것처럼 자기가 먼저 콜라 한 박스를 준비해서라도 힘써 용서를 도모해야 합니다.
양이 길을 잃었으면 그것은 양에게만 문제가 아니라 목자의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어쩌면 철없는 어린양은 자기가 길을 잃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한가롭게 풀을 뜯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목자에게는 큰일입니다.
지금 당장 찾아오지 않으면 안 되는 일입니다.
양 한 마리가 없어진 것을 알면서도 “울음소리가 들리기 전에는 찾으러 가지 않겠다”는 목자가 있으면 그 목자는 보나마나 가짜입니다.
양의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더라도 자기가 먼저 눈물을 글썽거려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 역시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하기를 바라십니다.
다른 말로 하면, 주님으로부터 죄를 용서받은 기쁨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마음껏 누리면서 살기를 바라십니다.
<하늘에 닿는 기도> p13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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