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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자리/믿음의 자리

하늘에 닿는 기도 - 16

minkyo 2022. 2. 11. 10:36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시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라고 기도합니다.
우리에게 시험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이미 마귀 수하에 있는 사람을 마귀가 굳이 넘어뜨리려고 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예수님도 시험을 받았습니다.
예수님도 시험을 받았으니 우리에게 시험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요 17:15)
예수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서 아예 데려가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살면서 악에 빠지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시험이 전혀 없는 세상에서 아무런 시달림 없이 살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면서 세상에 있는 시험에 이기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사랑해도 보통으로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아들까지 대신 죽이실 만큼 사랑하시는데도 세상에는 시험이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능력으로도 이 세상에 있는 시험을 없앨 수는 없든지 아니면 시험이 있다는 사실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방편이 되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저는 목회자입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중․고등부와 청년부를 맡고 있습니다.
(1998년 설교입니다.)
그러면 저의 책임은 무엇이겠습니까?
중․고등부 학생이나 청년들을 교회에 나오게 하는 것이 제 책임이 아닙니다.
저는 중․고등부 학생이나 청년들을 교회에 나오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나와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는 것보다 학생이나 청년들을 교회에 나오게 하는 일에 훨씬 더 많은 신경이 쓰입니다.
성경책을 펴놓고 어떻게 이 말씀을 알기 쉽게 가르칠까 하는 고민을 하고 싶은데 실제로는 교회에서 누구와 누구의 사이가 안 좋고 또 누가 어떤 일로 삐치고 하는 부수적인 일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빼앗기게 됩니다.
얼마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중․고등부 애 둘이서 다퉜습니다.
둘 다 교회에는 성실하게 잘 나오는 애들인데 서로 눈이 마주치는 것도 싫어합니다.
한 애가 있다가 다른 애가 오면 먼저 있던 애는 슬그머니 일어서 버립니다.
그 둘 때문에 상당히 신경이 쓰였습니다.
다소 고민스런 표정으로 앉아 있으려니 제가 안 되어 보였는지 어떤 청년이 저에게 그랬습니다.
“걔네들이 빨리 철이 들어야 우리 전도사님 속이 편할 텐데… 그죠?”
그래서 제가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습니다.
“왜요?”
“걔네들이 속을 썩이지 않을 만큼 철이 들면 다른 애가 와서 속을 썩이겠지. 속 썩이는 애가 없을 수는 없어. 원래 속은 썩어야 돼.”
골치 아픈 문제는 항상 있어야 합니다.
제가 교회에서 더 이상 골치를 앓지 않게 되었다면 지금 있는 애들까지만 철이 들고 그 후로 더 이상 새로운 애들이 오지 않았다는 뜻인데, 차라리 제가 골치를 앓아야지 그럴 수는 없는 일입니다.
제가 목회를 하고 있는 한 골치는 아파야 합니다.
비단 목회만 골치 아픈 것은 아닙니다.
본래 산다는 것 자체가 힘듭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것보다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것이 힘들고, 초등학교보다는 중학교, 중학교보다는 고등학교, 대학교, 직장생활, 결혼생활, 애 낳고, 키우고, 시집 장가보내고…
나이가 들수록 살기가 힘들고, 나이가 들수록 골치 아픈 일이 많아집니다.
아무리 골치가 아파도 그것을 기꺼이 감수하고 견디는 것이 그 사람이 인격적으로 성숙해 가는 과정입니다.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골치 아픈 일 없이 안락하면 그것이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는 분위기인 줄 아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골치 아픈 일의 연속인데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그 범주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따로 별천지에 모여서 살아가지 않습니다.
구원 얻기 전이나 구원 얻은 다음이나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은 동일합니다.
주변 환경은 변하지 않았는데 우리만 구원 얻지 못한 신분에서 구원 얻은 신분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니까 골치 아픈 것이 당연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골치 아픈 이 세상에서 “악에서 구하소서” 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굶어도 좋고 박해를 받아도 좋으니까 어떤 일이 있어도 제발 악에만큼은 빠지지 않게 해 주십시오” 하는 뜻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나타나는 모습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어쩌다 교회 한 번 빼먹는 것은 별 수 없지만 돈만은 많이 벌게 해 주십시오” 하는 것이 우리의 간절한 목마름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끼리 안타까운 일이 아니고 주님 보시기에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늘에 닿는 기도- 강학종 목사> p14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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