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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자리/믿음의 자리

하늘에 닿는 기도 -10

minkyo 2022. 2. 8. 10:06
사람은 먹어야만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먹을 때마다 기도를 합니다.
그러니 여기에는 “저의 생명은 주님께 있습니다. 저는 주님을 의지합니다. 주님 없이는 못 삽니다.”라는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먹는 양식 속에는 생명의 원리가 있습니다.
육의 양식도 그렇고 영의 양식도 그렇습니다.
주변에서 가끔 금식기도에 대한 얘기를 듣는 수가 있습니다.
특히 신앙에 열심이 있으신 분들이 그런 얘기를 자주 하는데 금식기도를 왜 합니까?
금식기도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금식기도를 하면 그냥 기도하는 것보다 응답이 빠르다고 합니다.
마치 금식기도 알기를 어렸을 적에 집에서 하던 단식 투쟁 정도로 아는 것입니다.
“엄마에게 그냥 얘기하는 것보다는 밥 안 먹고 투정 부리면서 용돈 달라고 해야 더 잘 주시더라” 하는 어린 시절의 못된 버릇을 나이가 든 다음에 교회에 고스란히 들고 온 격입니다.
하지만 금식기도는 “하나님께서 이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으면 저는 밥도 안 먹겠습니다”라는 뜻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육체는 먹어야 힘을 냅니다.
실제로 금식기도를 해보신 분은 경험했을 것입니다만 하루만 굶으면 온몸에 힘이 빠집니다.
이틀을 굶으면 성경책이 무겁게 느껴지고 발걸음을 옮기는 것도 힘이 듭니다.
한낱 미물에 불과한 호랑이나 늑대는 굶으면 오히려 더 활동력이 왕성해집니다.
훨씬 더 공격적이 됩니다.
심지어 구렁이 같은 경우는 한 달을 안 먹어도 거뜬히 생명을 유지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는 인간은 하루만 안 먹으면 허리를 못 폅니다.
하루까지 갈 것도 없이 평소보다 점심시간이 한 시간만 늦어져도 속에서 난리가 납니다.
우리는 분명히 먹어야만 힘을 얻습니다.
그런데 금식기도를 한다는 얘기는 먹는 것을 끊는다는 얘기입니다.
먹는 것을 끊는다는 얘기는 더 이상 자기 몸에서 힘을 만들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결국 어떤 일을 앞에 놓고 금식기도를 한다는 뜻은 “하나님, 이 일은 저로서는 감당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해 주시면 하는 거고, 안 해 주시면 못합니다.”라는 신앙고백이 담겨 있는 행위가 됩니다.
그런데 이 부분을 오해하면 “금식기도를 했더니 됐다”라는 말을 하게 됩니다.
“내가 아무 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었더니 저 바위가 움직이더라. 나는 역시 세다”라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기도는 어떤 일을 이루는 방법이 아니라 어떤 일을 대하는 자세의 문제입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움직일 수 없는 바위를 움직이는 신령한 방법이나 테크닉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에게 식욕이 있다는 사실은 상당한 복입니다.
굳이 식도락을 즐기는 미식가가 아니더라도 먹는 것은 누구나 좋아합니다.
만일 먹는 행위에 수반되는 감정이 즐거움이 아니라 고통이라면 상당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군대에서 완전군장하고 급속행군하는 심정으로 하루 세 끼 식사를 해야 한다거나 삽 들고 노가다를 하는 마음으로 밥을 먹어야 한다면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 자체가 괴로움입니다.
뚱뚱한 몸매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은 없어질지 몰라도 그것 말고는 좋은 점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실 때 그렇게 지으셨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는데 다행히도 먹는 것은 즐겁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말에는 먹는다는 표현이 많습니다.
어떤 공무원이 부정을 저지르면 돈을 먹었다고 합니다.
나이가 드는 것을 나이 먹었다고 하고, 떼먹다, 욕먹다, 맞먹다, 되먹다, 써먹다, 부려먹다… 참 다양하게 쓰입니다.
사람은 끊임없는 욕구를 가지고 있는데 그 모든 욕구를 먹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모든 욕구에는 만족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욕구에는 만족이 없는데 그 모든 욕구를 주로 먹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께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날마다 아룁니다.
이 두 가지를 서로 연결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 이 세상 것으로 채워지지 않는 이 갈급한 심령을 하늘에 속한 것으로 채워 주옵소서”라는 뜻이 됩니다.
인간의 모든 죄가 탐심에 근거합니다.
우상에게 절하지 말라고 했는데 돈 때문에 신앙 양심을 속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라고 했는데 물질적인 욕심 때문에 주일을 제대로 지키지 않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는데 부모 공경보다는 돈이 먼저입니다.
돈 때문에 살인하고, 돈 때문에 간음하고, 돈 때문에 훔치고, 돈 때문에 거짓말하고… 이 모든 죄악이 탐심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결국 죄악을 이기려면 탐욕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자기 안에 본성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탐욕을 제어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늘에 닿는 기도- 강학종 목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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