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마치 자기 뜻을 하늘에서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 기도인 줄 알고 간절히 기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기도의 본질이 아닙니다.
사람의 뜻을 하늘에서 이루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통하여 하늘의 뜻이 자기에게서 이루어지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세상에서 살다보면 다른 사람의 계획이나 목표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아무런 부담 없이 그 계획이나 목표를 격려해 줄 수 있습니다.
방학을 이용해서 운전면허를 딸 예정이라고 하면, 열심히 해서 꼭 합격하라고 하면 됩니다.
주말에 미팅 나가는데 킹카가 걸렸으면 좋겠다는 친구에게도 마음먹은 대로 되기를 바란다는 얘기를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의 의도에 자기도 포함되어 있는 경우에는 함부로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이번 주말에 뭐할 거야?” 하고 물었을 때, “글쎄, 너하고 같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는데” 하고 대답하면, 그다음 말에는 자기 의사가 표현되어야 합니다.
같이 영화를 볼 마음도 없으면서 “야! 그거 좋은 생각이다” 할 수는 없습니다.
자기도 영화를 볼 마음이 있어야 그 친구의 계획에 찬동할 자격이 생기는 것입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기도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할 의사가 있어야 이런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려면 먼저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해야 합니다.
혹시 알람은 6시에 맞춰 놓고 실제로는 9시에 일어난 적 없습니까?
그럼 6시에 일어나는 것은 알람 뜻이었고 9시에 일어난 것은 자기 뜻이었다는 얘기인데, 어느 쪽이 자기에게 유익입니까?
사실 자기 생각이 있는 상태에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따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친구와 둘이 중국집에 갔습니다.
같이 간 친구가 아무 거나 먹겠다고 하면 “짜장면 둘!” 하고 시켜도 별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애초부터 짬뽕이 먹고 싶어서 중국집을 찾은 친구에게 짜장면을 먹이려면 얘기가 복잡해집니다.
우리가 그렇습니다.
우리 생각은 전혀 없는 진공상태에서 하나님께서 “이건 이렇게 하고 저건 저렇게 해라”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에게는 확고한 우리 생각이 있습니다.
나는 이것을 하고 싶은데 하나님께서는 한사코 저것을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데이트 약속이 있어서 퇴근 시간만 기다리고 있는데 난데없이 야근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집에 가 봐야 기다리는 사람도 없고 썰렁한 빈방에서 처량하게 라면을 끓여 먹어야 하는 사람이라면 야근을 구실로 회사에서 저녁을 해결하는 것이 훨씬 더 편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약속이 있는 사람은 입장이 다릅니다.
그리고 이 두 경우에 회사 사장 보기에 누가 더 회사에 열심 있어 보이는지는 자명한 일입니다.
애가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서 게임을 하면 어머니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당연히 나무랄 것입니다.
어머니가 “게임 그만 하고 공부 좀 해라”라고 하자, 아이가 “알았어요. 이것만 하고요…”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어머니는 조금만 있으면 공부를 시작할 줄로 알았는데, 한 시간이 넘게 소식이 없습니다.
그래서 다시 묻습니다.
“야, 너 공부 안 하고 뭐 해?”
“아직 안 죽었단 말이야!”
날이면 날마다 게임을 했으니 얼마나 잘하는지 도무지 게임이 끝나지를 않습니다.
공부를 하려면 하던 게임을 마저 하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던 것을 지금 당장 멈추고 해야 합니다.
하고 싶다고 해서 하던 것을 마저 하면 공부할 시간이 남지 않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당장 마음속에 있는 자기 뜻을 접어놓고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꾸물대면 순종할 기회가 없어집니다.
초대교회 당시에는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죽음을 당하는 것이 흔한 일이었습니다.
처형 방법은 상당히 다양했는데, 그중의 하나가 사자 밥이 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굶주린 사자가 으르렁대는데 무섭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신앙을 보류할 수도 없습니다.
지금은 사자가 무서우니까 일단 순교를 보류했다가 가서 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서 사자가 무서워지지 않을 만한 수준으로 신앙을 쌓은 다음에 순교를 하는 법은 없습니다.
<하늘에 닿는 기도- 강학종 목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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