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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자리/믿음의 자리

하늘에 닿는 기도 -3

minkyo 2022. 2. 3. 10:46
루터가 한 말 중에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라고 했다고 해서 “수리 수리 마하수리 하나님이 되어라 얍!”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여기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미 충만하게 거룩하신 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거룩하게 여긴다고 해서 지금보다 더 거룩해지고, 우리가 하나님을 거룩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거룩이 손상되는 법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거룩은 불변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다는 우리에게서 풍기는 이미지에 따라서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갖는 이미지도 달라질 것입니다.
“저 애가 아무개 아들이다”가 칭찬입니까? 꾸중입니까?
칭찬할 때 이 말을 쓰면 칭찬이고 꾸중할 때 이 말을 쓰면 꾸중입니다.
동네 어른에게 인사를 했을 때 “야! 너 참 착하다. 너 누구 아들이냐?”라고 하면, 칭찬입니다.
그 아이 부모도 같이 칭찬을 듣는 셈입니다.
하지만 유리창을 깨고 도망가다 잡혔을 때 “너, 누구 아들이야?”라고 하면, 꾸중입니다.
그 아이 부모까지 도매금으로 욕을 먹는 꼴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동명이인이 있습니다.
이스라엘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서는 동명이인을 구별하기 위해서 두 가지 방법을 썼습니다.
하나는 출신 지방을 같이 언급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버지의 이름을 같이 말하는 것입니다.
나사렛 예수, 디셉 사람 엘리야가 전자의 예이고, 눈의 아들 여호수아,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라고 말하는 것이 후자의 예입니다.
눈의 아들 여호수아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서 여호수아의 아버지인 눈은 아무런 부끄러움이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자랑스러울 것입니다.
하지만 가룟 유다의 아버지는 그렇지 않습니다.
아들의 부끄러운 이름을 같이 뒤집어써야 합니다.
이처럼 아들이 누구냐에 따라서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는 천양지차로 달라집니다.
TV 화면에 비친 두 종류의 어머니의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의 어머니, 수능시험에 전국 수석을 차지한 학생의 어머니, 사법고시에 합격한 아들의 어머니…
이들의 모습에는 한결같이 기쁨과 자랑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군 복무를 하다가 부대를 뛰쳐나온 탈영병의 어머니, 인질범 아들을 설득시키기 위해서 달려온 어머니, 자식의 사고 소식을 듣고 달려와 망연자실한 어머니…
이들의 모습은 한결같이 초췌했습니다.
전자의 어머니가 더 교양 있는 것도 아니고, 후자의 어머니가 덜 인격적인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두 어머니의 모습은 판이하게 달라 보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떤 모습이냐에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기도 하고 손상 받기도 합니다.
알렉산더가 진중을 시찰하는데 막사 안에서 병졸들이 하는 얘기가 들렸습니다.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니 누군가의 흉을 보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계속 듣고 있으려니까 지금 욕하는 대상이 바로 자기였습니다.
“알렉산더, 그 놈 참 나쁜 놈이야.”
“맞아. 도무지 남을 배려할 줄 몰라. 그 놈은 정말 인간성도 더러워.”
“난 그 놈 얼굴만 안 보면 살 것 같아.”
“……”
얘기를 듣던 알렉산더가 노발대발했습니다.
아무리 잡담이지만 감히 황제인 자기를 모욕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당장 그 막사에 있던 군인들을 잡아오라고 했습니다.
“네 이놈들! 너희들은 감히 황제를 모욕했다. 그 죄는 죽어 마땅하다.”
그런데 잡혀 온 군인들은 전부 다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습니다.
자기네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도무지 모르는 눈치였습니다.
“내가 직접 들었는데도 시치미를 뗄 작정이냐?”
서슬 퍼런 알렉산더의 호령 앞에서 그들은 그때서야 대답했습니다.
“폐하, 저희는 폐하를 흉본 것이 아닙니다. 저희 동료 중에 폐하와 이름이 똑같은 알렉산더라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의 행실이 별로 좋지 않아서 그 얘기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알렉산더가 당장 그 병사를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영문도 모르는 채 분위기에 눌려 벌벌 떨고 있는 그에게 추상같이 말했습니다.
“네가 알렉산더냐?”
“예, 그렇습니다.”
“황제인 내가 명령한다. 너는 당장 이름을 바꾸든지 행실을 바꾸든지 둘 중의 하나를 바꿔라.”
우리가 바로 그렇습니다.
우리는 크리스천이라는 이름을 바꾸든지 아니면 크리스천으로서 살아가는 모습을 바꾸든지 둘 중의 하나를 바꿔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늘에 닿는 기도- 강학종 목사> p5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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