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영도에 위치한 흰여울교회입니다.

신앙의 자리 599

소망에 근거한 믿음과 사랑 (골로새서 1:4~6)

[웹진 평:상 72호] 평.보.성 | 소망에 근거한 믿음과 사랑 (골로새서 1:4~6) 소망에 근거한 믿음과 사랑 (골로새서 1:4~6) 4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여러분의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해서 여러분이 품고 있는 사랑을 전해 들었습니다. 5 이 믿음과 사랑은 여러분을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두신 소망에 근거합니다. 이 소망은 여러분이 진리의 말씀 곧 복음을 받아들일 때에 이미 들은 것입니다. 6 이 복음은 온 세상에 전해진 것과 같이, 여러분에게 전해졌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를 듣고서 참되게 깨달은 그날로부터, 여러분 가운데서와 같이 온 세상에서 열매를 맺으며 자라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1:4~6)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의 신앙을 칭찬하는 것으로 골로새 교회를 향한 편지를 시작합니다...

<생활성서> 내 눈을 빌려주고 싶습니다

주간 평화교회 115호| 내 눈을 빌려주고 싶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조롱하는 것은 그를 지으신 분을 모욕하는 것이다. (잠 17:5, 새번역) 추석을 앞두고 잠시 펜을 들었다. 목사가 되어 안 좋은 점이 한 가지 있다면, 명절에 부모님을 뵙기 어려울 때가 많다는 점이다. 그나마 평신도인 형을 대신 보낼(?) 수 있는 상황이라 참 다행이다.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나에게 추석은 ‘새우튀김을 먹는 날’ 이었다. 6학년 때까지 재래식 화장실이 딸린 집에 살던 형편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큰 맘 먹고 부엌에 쭈그리고 앉아 열심히 튀김가루와 계란 옷을 입히시는 엄마 옆에서 신나서 ‘주워’ 먹었는데, 울 엄마는 한 번도 핀잔을 주지 않으셨다. 지금보다 많이 없이 살았지만, 엄마라는 큰 우산을 쓰고 살던 그 시절이 사무..

<생활성서> 기다림의 윤리학

주간 평화교회 118호| 기다림의 윤리학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합니다. (고전 13:4, 새번역) 어느 날 아침, 유치원에 가려고 아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서너층을 내려가다 중간에 멈춰선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할아버지 한 분이 다리를 절뚝거리며 타셨다. ‘몸이 불편하신 분이로구나’ 하는 순간, 할아버지는 기습적으로 아들의 볼을 만지셨다. 검지로 ‘툭’ 건드리시는 정도였다. 나는 순간 당황했다. 요새는 그런 가벼운 터치도 ‘트렌드’에 맞지 않은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함부로 만지지 마세요’라는 포스터였나, 플래카드였나. 하여간 그런 문구를 봤던 기억이 난다. 물론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어디 감히 내 아들을!’ 이라며 난리를 칠 이유까지는 없었다. 왜냐하면 할아버지 눈빛을 봤는..

<영적여정의 오솔길> 영적 여정의 친구되기

주간 평화교회 120호| 영적 여정의 친구되기 1. “영성지도에 참여하기 위한 단 하나의 전제조건은 영성지도를 받기 원하는 사람이 하나님께 대한 영적인 체험을 가지고 있고, 영성지도자와 그 체험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 체험이 어떠한 기도방식을 통하여 오건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 토마스 머튼 - 2. “그는 나에게 많은 시간과 관심을 나타내 보였지만 내가 일분도 낭비하지 않도록 하였다. 그는 내가 온전히 자유롭게 나의 느낌과 생각을 표현하도록 하였지만 그 자신을 선물로 주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사려 깊게 선택하고 결정하도록 하였지만 더 낳은 그의 의견이나 판단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내가 스스로 나의 길을 찾도록 하였지만 바른 지도를 숨기지 않았다. 우리의 대화 ..

<영적여정의 오솔길> 침묵의 농담

주간 평화교회 117호| 침묵의 농담 1. 침묵기도학교를 진행하다보면 자주 듣는 말이 ‘침묵’에 대해서 설명을 해달라는 것이다. 침묵이라는 말의 뜻을 모르는 사람이 하는 말이 아니다. 침묵沈默은 잠길 침沈자에 잠잠할 묵默자를 써서 ‘아무 말도 없이 잠잠히 있음’, ‘정적이 흐름’, ‘어떤 일에 대하여 그 내용을 밝히지 아니하거나 비밀을 지킴’, ‘일의 진행 상태나 기계 따위가 멈춤’이라고 사전적으로 정의하고 있다. 침묵기도학교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이 정도의 의미를 몰라서 더 설명해달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침묵을 설명해달라는 말은 체험은 하지만, 그리고 더 깊은 체험을 원해서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말로 설명해달라는 말이다. 2. 침묵은 일차원적인 것이다. 상황과 맥락, 그리고 의지에 따라서 침묵의..

<신약따라걷기> 천국의 열쇠들

주간 평화교회 119호| 천국의 열쇠들 ​ ​ ‘쌍방’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믿음의 쌍방성, 믿음의 상호성에 대해 말하면서 A. J. 크로닌의 소설 『천국의 열쇠』의 한 장면을 예로 든 적이 있다. 무신론자인 친구의 죽음을 앞에 둔 치점 신부의 안타까운 작별의 말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믿음을 넘어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믿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 소설 속 대목이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쌍방적 믿음과 관련하여 독자를 깊은 성찰로 이끄는 매우 인상적인 장면이기는 하나 이것이 전체 소설의 중심 주제는 아니다. 소설의 주제는 한 마디로 ‘관용’이다. 寬容이라는 한자어가 ‘너그럽게 용서하고 받아들임’이라는 뜻이기에 우리는 관용이라는 말을 내가 누군가를 봐주거나 용서해준다는 시혜적인 의미로 이해할 때가 많다...

한국교회 기독청년들이 떠나고 있다

[웹진 평:상 74호] 무중력세대 | 한국교회 기독청년들이 떠나고 있다 한국교회 기독청년들이 떠나고 있다 (본 글은 한국기독교사회발전협회에서 주최한 “포럼카이로스#11”에서 발표한 발제문을 수정보완한 글입니다.) ​ 한국교회, 기독청년이 떠나고 있다. 아니 이미 많은 기독청년들이 떠났다. 구태여 구체적인 통계를 근거로 들지 않더라도, 당장 출석하는 교회에 청년부가 조직되어있는지, 조직되어 있다면 청년들의 숫자는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본다면, 기독청년들이 한국교회를 떠나고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시게 될 것이다. 혹자들은 이를 인구감소에 따른 자연적인 현상으로 보기도 한다. 인구가 감소하니 자연스레 교회 안에 청년세대도 줄어든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는 합리적인 추론이다. 한국사회 현재 OECD 국가 중에 가장..

2022. 12. 14

많은 백성들이 주께로 돌아서야 하리니,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어야 한다. 스가랴 2:11 요한이 씁니다. “그 뒤에 내가 보니, 아무도 그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에서 나온 사람들인데, 흰 두루마기를 입고, 종려나무 가지를 손에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 있었습니다.” 요한계시록 7:9 사랑으로 온 세상을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여러분의 손을 위로 높이 뻗으십시오. 로타르 체네

2022. 12. 13

여러분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시험하면 안 됩니다. 신명기 6:16 자기를 속이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조롱을 받으실 분이 아니십니다. 사람은 무엇을 심든지, 심은 대로 거둘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7 우리의 마음과 생각에 지혜와 조언, 이성 그리고 훈육을 덧입혀 주십시오. 우리는 주님의 뜻을 찾는 것 외에 다른 어떤 것으로도 시작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통찰이 위대하시오니, 우리가 오류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하인리히 헬트

2022. 12. 12

주님의 환한 얼굴로 주님의 종을 비추어 주십시오.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으로 저를 구원하여 주십시오. 시편 31:16 여러분이 전에는 어둠이었으나, 지금은 주님 안에서 빛입니다. 에베소서 5:8 영원한 빛이 되신 분이 여기에 오셔서 세상에 ‘새로운 빛’을 던져 줍니다. 그 빛은 어두운 한밤중에 빛나고 우리를 빛의 자녀로 만듭니다. 주님 여기에 오십시오. 마르틴 루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