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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자리/믿음의 자리

잠시만요, 계속 축복하실게요.(로마서 7:9~12)

minkyo 2022. 12. 14. 11:40
[웹진 평:상 75호] 평.보.성 | 잠시만요, 계속 축복하실게요.(로마서 7:9~12)
 
잠시만요, 계속 축복하실게요.
 
로마서 7:9~12
9 전에는 율법이 없어서 내가 살아 있었는데, 계명이 들어오니까 죄는 살아나고, 
10 나는 죽었습니다. 그래서 나를 생명으로 인도해야 할 그 계명이, 도리어 나를 죽음으로 인도한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11 죄가 그 계명을 통하여 틈을 타서 나를 속이고, 또 그 계명으로 나를 죽였습니다. 
12 그러므로 율법은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것입니다.
 
기독교 영역에서 '죄'에 대해서, '법'에 대해서 말하는 것만큼 고리타분한 일이 있을까요? 이해하기 복잡한데다가 피상적이기까지 해서, 우리가 사는 이야기와 뭐가 그리 관련이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 성소수자들을 '축복'한 행위가 '죄'로 확정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교회법인 '교리와 장정'을 근거로 성소수자의 존재 자체를, 그리고 그들을 축복한 행위까지도 죄로 규정했습니다. 어떤 기준과 판단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교회법이 제대로 정상적으로 집행되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구요. 또는 법도 죽었고 그 집단들도 죽었으며 한국 교회도 죽었음을 직감하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법'이라는 성질의 것이 공동체에 처음으로 생겨났을 때, 그 목적은 무엇이었을까요? 아무런 근거 없이 서로를 다치게 하거나 상하게 하는 최악의 행위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생겨났을 것입니다. 타인을 향한 악의를 멀리하고 선의를 취하기 위한 조치였을 것입니다. 바울이 율법을 그럼에도 여전히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그랬을 것이구요. 구약의 율법을 대표하는 '십계명' 역시 그 당시의 시대 속에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지키고 보호할 요량으로 주어진 것으로 우리는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축복'이 '죄'로 규정되었던 이번 사건이 증명해내듯,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본질을 가진 법과 계명이 누군가의 손에 의해 오히려 죄를 살려내고 영혼을 죽게 하는 일도 가능하다는 사실도 우리는 목도했습니다. 타인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하는 죄를 그제서야 죄로 인식하게 되는 순기능이 분명 법 아래에 있기도 하지만, 반대로 죄라고 할 수 없는 것조차 죄로 규정하게 되는 역기능도 확실히 발휘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법은, 분명한 죄를 죄로 묻는 도구보다 죄가 아닌 것조차 죄로 묻는 도구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작 명확하게 죄를 물어야 할 성범죄와 비리의 문제에 대해서는 없던 관용과 포용의 정신까지 생기기도 하구요. 죄라고 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현미경으로 세포 하나 하나를 들여다보듯 죄를 묻는 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더군다나 '권력'이라는 이해관계와 결탁할 때, 누군가는 명백한 죄를 범하고도 처벌 받지 않는 자유를 누리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일방적으로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죄인으로 낙인 찍히는 일도 발생합니다.
 
죄를 죄로 묻는 일이든 죄가 아닌 것조차 죄로 묻는 일이든, '하나님의 정의'는 기존의 법 아래에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기존의 법은 결국 기존의 '권력'이라는 유리 천장을 넘어설 수 없으니까요. 그렇기에 우리가 꿈꾸는 하나님 나라의 정의와 평화는 분명 법을 넘어서는 영역에서 발휘되는 것이 아닐까요.
 
바울도 그걸 알기에 이렇게 말을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해를 입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로마서 13:10). 현실에서 법을 넘어서는 삶을 상상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의 작은 일상에서 만나는 이들과 함께 작지만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시작하는 일이야말로, 법을 넘어서 하나님 나라의 정의를 이루는 시작임을 믿습니다. 주변에서 아무리 우리의 사랑을 죄로 몰아간다 해도, 우리는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기대어 널리 그리스도의 평화가 모든 이들에게 차고 넘치길 축복하는 삶을 포기하지 않고 이어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