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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여정의 오솔길> 영적 여정의 친구되기

minkyo 2022. 12. 14. 11:34
주간 평화교회 120호| <영적여정의 오솔길> 영적 여정의 친구되기
 
1.
“영성지도에 참여하기 위한 단 하나의 전제조건은 영성지도를 받기 원하는 사람이 하나님께 대한 영적인 체험을 가지고 있고, 영성지도자와 그 체험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 체험이 어떠한 기도방식을 통하여 오건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 토마스 머튼 -
 
2.
“그는 나에게 많은 시간과 관심을 나타내 보였지만 내가 일분도 낭비하지 않도록 하였다. 그는 내가 온전히 자유롭게 나의 느낌과 생각을 표현하도록 하였지만 그 자신을 선물로 주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사려 깊게 선택하고 결정하도록 하였지만 더 낳은 그의 의견이나 판단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내가 스스로 나의 길을 찾도록 하였지만 바른 지도를 숨기지 않았다. 우리의 대화 속에서 그는 단지 듣는 사람만이 아니라 안내자였고, 상담자만이 아니라 영성지도자였다” - 헨리 나웬 -
 
3.
2022년 11월 넷째 주간에 성공회 성직자 연피정에 영적 동반(spiritual direction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영성지도’ 혹은 ‘영적지도’라는 말로 번역되지만, 샬렘에서는 참여하는 사람들의 영적인 자유와 수평적인 관계를 표현하기 위해 영적 동반이라는 말을 선호한다.)을 부탁받아 시흥 성바오로 피정의 집에 들어왔다. ‘피정’이란 말은 영어 retreat를 한국말로 번역하면서 세상의 소란함에서 벗어나 잠시 조용히 묵상에 잠기거나 자신을 닦는다는 피세정념(避世靜念), 혹은 피소정념(避騷靜修)으로 표현하기 위해 선택된 단어이다. 대부분 개신교에서 이 단어를 ‘수양회(修養會)’, 혹은 ‘수련회(修鍊會)’라는 말로 번역하였다. 신학대학원에서 들어와서 처음으로 접했던 단어중에 하나가 ‘퇴수회(退修會)’인데 세상에서 잠시 물러나서 닦는다는 의미로 이 역시 retreat를 번역한 것이다. 최근에는 이 단어를 번역하지 않고 그냥 ‘리트릿’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종종 만나게 된다. 같은 단어를 자신이 소속한 공동체의 맥락에 따라서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4.
이렇게 다양하게 번역된 용어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과 맥락을 따라 다른 의미들이 덧붙여지게 된다. 잠시 수양회, 수련회를 떠올려보면 중고등부 학생때 여름이나 겨울에 교회에서 정기적으로 행해졌던 다양한 활동들이 생각난다. 이때 그 수양회는 많은 경우 내면을 깊이 있게 성찰하기 보다는 다양한 외부적인 활동과 특정 강사들의 강연으로 채워지곤 했다. 물론 피정들도 그 성격에 따라서는 수양회나 수련회와 별다르지 않은 모습을 띄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 피정은 외면적인 활동보다는 자신의 내면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성찰할 수 있는 형태로 구성되어진다. 그리고 이를 돕기 위해 깊은 침묵의 환경을 조성하며, 다른 사람들이 깊이 있게 성찰할 수 있도록 간섭하거나 방해하지 못하도록 행동을 서로 조심하게 된다.
 
5.
성공회나 가톨릭에서 1년에 한번 모든 성직자들을 대상으로 연피정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모든 성직자들이 1년에 한번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성직에 대한 소명을 돌아보고, 갱신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보고, 모든 개신교의 성직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 여겨었다. 대부분의 개신교단에서 목회자들을 위해 제공하는 목회연수나 교육 프로그램이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너무나 잘알고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살펴본 수양회/수련회와 피정의 차이가 여기에서 극명하게 들어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성격의 차이는 많은 목회자들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살펴보기 보다는 어떤 프로그램과 활동을 통해 교회를 활성화할 수 있는 외면적인 활동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6.
성직자들의 영적 동반을 마치고 되돌아보니, 2008년 부터 시작하여 함께 영성훈련을 해온 시간들이 지금 이 자리로 나를 이끌고 있었구나하는 마음이 들었다. 연피정에 들어오기 바로 직전에도 미국에 있는 단체에서 영적 동반에 대한 강의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아 줌으로 2시간에 걸쳐 강의를 하고 들어온 터였다. 영성 훈련과 영적 동반에 관련된 공식적인 학위는 전무하지만, 샬렘에서 15년 넘게 지속적인 훈련과 다양한 프로그램을 동반한 열매라고 여겨졌다. 여전히 부족하고 배울 것이 많이 있다. 하지만 지난 15년동안 영적 동반을 해주신 골롬반 외방선교회의 수사신부님, 성심회의 두 분 수녀님, 예수회의 수사신부님들을 통해 영적 동반의 많은 것을 체득할 수 있었다. 특히 아빌라의 데레사와 십자가의 성요한을 가르쳐주신 갈멜의 신부님들을 통해 영적 여정에서 만나는 ‘어둔 밤’을 포함한 다양한 체험을 배운 것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
 
7.
그러나 무엇보다 샬렘을 통해 훈련하고 체득한 것들이 영성에 대해서 배운 그 무엇보다 값진 것임을 다시금 확인했다. 그때 그 시절에 밭에 묻힌 보화라는 것을 알지도 못하면서 할 수 있는 것을 모든 방법을 동원해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분의 강권적인 이끄심은 아니었을까하는 마음이 들었다. 영성의 길은 더 많은 지식과 정보를 채우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과 외면의 관계를 끊임없이 성찰하면서 더 낮은 목소리를, 신음하는 소리를, 상처와 고통 가운데 계신 그분을 만나는 훈련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영성이란 현란한 언어와 단순명쾌한 표현이 아니라, 자신의 몸과 마음을 부단히 닦고 연마하는 가운데 우러나오는 것임을 조금은 알게 된 것이다. 진가를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강한 이끌림에 들어선 길이기에 더욱 그런 마음이 들었다. 되돌아보면 알 수 없는 그분이 이끄시는 길없는 길위에서 서서 말로는 할 수 없는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다. 영적 여정 앞서 가신 신앙의 선배들이 자신들이 체험한 일들에 대하여 “오, 놀라운 신앙의 신비여”라고 표현한 그 마음을 어렴풋하게 알듯하기도 하다.


글쓴이: 김오성 목사 (한국샬렘영성훈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