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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자리/믿음의 자리

하늘에 닿는 기도-1

minkyo 2022. 1. 26. 09:50
주님께서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떤 내용으로 기도하기를 바라실지는 자명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 마음대로 기도합니다.
아직 주기도문도 제대로 외지 못하는 초신자가 갖고 있는 기도 제목이나 주기도문을 줄줄 외는 기성 교인들이 갖고 있는 기도 제목이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친히 기도를 가르쳐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기도를 배우고 있지 않다는 단적인 증거입니다.
왜냐하면 자기들 나름대로의 기도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어느 종교에나 공통적으로 있는 종교 행위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이라도 자기에게 있는 본성적인 종교심에 근거해서 얼마든지 기도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신봉하는 종교가 없어도 관계없습니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본래적인 욕구에 의해서 얼마든지 기도할 수 있는데도 주님께서 특별히 기도를 가르쳐 주셨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기도가 자연스런 욕구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 맞춰서 다듬어지기를 바라신다는 뜻입니다.
비록 우리는 땅에 속하여 살지라도 우리의 기도는 땅에 매어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연결되기를 바라십니다.
“기도”를 동원해서 자기의 세속적인 욕망을 신령한 방법으로 이루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육신으로 이 세상에 계셨을 적에 친히 구하셨을 만한 것들을 구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교인들이 기도하는 것을 보면 다분히 인본적이고 무속적입니다.
형식으로서의 “열심”은 있는데 그 열심 안에 마땅히 들어 있어야 할 “내용”은 없습니다.
“무엇을” 기도하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고 “어떻게” 기도하는지에만 신경을 곤두세웁니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기도를 하기도 하고 밤을 새워서 기도하기도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밥도 안 먹고 기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기도는 간절해야 합니다.
새벽기도나 철야기도, 금식기도가 필요 없다는 얘기는 결코 아닙니다.
자기의 기도에 대해서 “이만하면 됐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지금보다 훨씬 더 열심히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밤을 낮 삼아 기도해야 하고 밥 먹을 겨를도 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조심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열왕기상 18장에 있는 내용을 얘기하면서,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간절히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불로써 응답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때까지 간절하게 기도하자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백번 지당한 얘기 같지만 유감스럽게도 말도 안 되는 얘기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바알 선지자와 아세라 선지자는 간절하게 기도하지 않아서 응답을 받지 못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때 바알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은 자기들의 몸에서 피가 흐르도록 기도했습니다.
적어도 “간절함”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들도 결코 엘리야에 못지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기도를 들을 대상이 없었습니다.
기도는 물론 간절해야 하지만 그에 앞서 “하나님”에게 초점이 있어야 합니다.
하다못해 부모가 자식에게 용돈을 주는 경우에도 “용돈을 구하는 태도”보다 “용돈의 용도”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부모의 관심은 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돈을 받아가는 자식에게 있습니다.
하지만 철없는 아이들은 이것을 모릅니다.
그들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용돈을 받아내느냐” 하는 것에만 있습니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는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심통을 부리기도 합니다.
용돈으로 인하여 주머니가 두둑해지는 것만 알고 용돈을 매개로 하여 자기가 철이 들어야 하는 것은 모릅니다.
그런데 그런 식의 사고가 천국 백성이 된 다음에도 여전히 잔존하는 것입니다.
전부 다 “하늘 보좌를 움직이는 기도”를 하려고 합니다.
마치 기도를 사이에 놓고 하나님과 싸움을 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본래 기도를 들어줄 마음이 없었는데 자기의 끈질긴 기도를 버티다 못하여 결국 두 손 들게 만드는 것이 잘하는 기도인 줄 압니다.
하나님과 자기가 같은 편이라는 의식을 도무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각설하고 주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자의적으로 하는 기도는 주님 보시기에 함량 미달이라는 뜻입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를 기준으로 우리의 기도를 고쳐야 합니다.
우리 마음의 소원을 바꾸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그런 기도를 드릴 만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늘에 닿는 기도- 강학종 목사>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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