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blog.kakaocdn.net/dn/Zs0Gu/btrB6PBrDCN/9hzH1rpYZS9k50242V2vm1/img.jpg)
한국교회 청년지도력은 가능한가?
청년정치의 등장
청년정치가 한동안 우리사회의 이슈였다. 30대 정치인이 한 정당의 대표로 선출되고, 26살의 청년이 여당의 비대위원장으로 선출되는 등 청년정치인들이 약진하고 있다. 정당들도 청년 리더십을 갈망하는 사회요구를 반영하여, 청년정치인들을 발굴하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 청년정치가 우리사회의 핵심 이슈로 떠오른 현상에 대해서 여러 다양한 분석이 있지만, 나는 청년의제를 정치권에서 다루기 시작한 것이 가장 핵심적인 이유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공정의 문제, 젠더이슈, 부동산 폭등으로 인한 청년세대의 절망감, 청년빈곤문제, 가상화폐 등등 청년세대가 피부로 느끼며 논쟁했던 이슈들을 기성정치권이 다루게 되면서, 청년들의 정치참여가 자연스럽게 떠오른 것이다.
더불어 이전까지 정치에 대한 청년들의 냉소적인 시각들이 우세했다면, 그러한 냉소적인 시각만으로는 현실을 바꿀 수 없겠다는 인식이 생겨난 것도 중요한 이유라 생각한다. 이것이 적극적인 정치참여와 의사표현으로 이어지고 지난 선거를 통해서, 청년유권자들의 역량이 확인 되면서, 청년정치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청년정치가 보수든, 진보든, 중도이든 다양한 진영에서 활성화되어서 우리사회의 청년들이 관망자에서 주체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우리사회가 건강한 사회가 되는 길이라 생각한다.
한편 이러한 우리사회의 청년정치의 새로운 바람을 보면서, 한국교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쯤 교회 안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 수 있을까? 젊은 리더십들이 활발하게 세워질 수 있을까? 과연 교회 안에, 교단 안에 청년들, 젊은 세대가 관망자에서 주체로 자리 매김 할 수 있을까? 그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질문은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교회 청년리더십의 현재
지난 21대 총선 국회의원의 평균나이는 54.9세였다. 40세 미만 청년 국회의원 수는 14명, 비율로만 보면 4.3%이다. 우리나라 40세 미안 유권자 비율이 33.8%였음을 고려하면, 청년유권자 수 대비 국회의원 비율이 현저히 낮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비율은 OECD국가 중에서도 최하위권이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상황과 비교하면, 이러한 수치도 사실 감지덕지한 수치이다. 우리나라 5인 이상 기업 직장인들의 평균 나이는 2018년 통계로 42세이다. 대기업 임원들을 대상으로 좁히면, 53세이고, 40대 임원의 비율은 21.6%이다. 현재 기업들이 연령에 상관없이 역량이 검증된 30-40대를 임원으로 발탁하고 있어, 평균연령대가 점점 줄어들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면 한국교회와 교단은 어떨까? 한국교회, 교단 총대와 관련한 통계를 보면, 예장통합의 경우 지난 105회 총회 때 총대 평균 연령이 62.62세였다. 104회 총회 때는 비율이 조사되었는데, 40대 총대가 0.9%, 50대 총대는 21.8% 60대 총대가 75.53%, 70대 총대도 2.3%였다는 결과가 나왔다. 감리교는 다소 시간이 지났지만, 지난 2015년 입법총회 총대 평균 연령이 65세였고, 지난 2018년 행정총회 당시 50대 미안 총대가 8%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20, 30대 청년 총대는 0.2%였다는 결과가 나왔다. 감리교 성도 중에 6.7%를 차지하는 20, 30대 청년성도의 비율을 고려하면, 0.2%라는 수치는 매우 불합리한 수치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기독교장로회는 공식화된 통계자료는 없지만, 청년회에 자문을 구한 바에 의하면 104회 총회 때 30대 여성 목사가 여성할당제로 총대가 된 것이 유일한 40대 이하 총대였다고 한다. 세 교단을 예를 들었으나, 여타 교단들도 상황은 다를 바가 아니라고 짐작이 된다.
결론적으로 한국교회와 교단의 리더십은 일반사회나, 기업, 정치권에 비해서 매우 높은 연령대를 형성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교회 안에 젊은 리더십 갈수록 세워지기 어려울 것이고, 자연스럽게 청년들의 목소리도 반영되기 힘든 구조가 될 것이다.
한국교회 안에 젊은 리더십이 세워지기 힘든 이유
한국교회 안에 젊은 리더십이 세워지기 힘든 이유는 제도적인 측면과 인식적인 측면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제도적인 측면에서 살펴보겠다. 바람직하든 그렇지 않든 한국교회의 의사결정구조에 막강한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은 ‘장로’들이다. 장로는 평신도 리더십의 절정이고, 이러한 장로들이 교회 내에 구성되어 있는 여러 부서를 통솔하고 있는 것이 한국교회 조직의 현실이다. 이러한 한국교회의 조직적 문화가 지속되는 한, 청년세대, 젊은 세대가 장로직분을 받아 실질적인 권한을 갖는 것이 의사결정구조에 참여하기 위한 유일한 길인데, 여기에는 제도적으로 매우 어려운 난관이 있다. 일단 장로라는 직분을 얻기 위해서는 매우 긴 시간이 요구되며, 나이제한까지 두고 있는 교단들이 있기 때문에, 청년들, 젊은 세대들이 장로가 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다. 또한 신앙의 연수와 경험, 연륜을 리더십의 중요한 가치로 두고 있는 한국교회의 분위기 속에서 젊은 장로, 청년 장로가 세워지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볼 수 있다.
사실 한국교회가 청년들, 젊은 세대가 참여할 수 있는 개방적인 구조이고, 청년들의 의견이 수렴되는 민주적인 조직이라면, 굳이 장로직분을 받아서 의사결정 구조에 참여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한국교회가 그러한 상황이 되지 못하니, 젊은 장로, 청년장로의 등장을 생각해보는 것인데, 이마저도 제도적으로 매우 힘든 상황이니, 여러모로 교회는 젊은 세대, 청년 세대의 참여가 힘든 공간인 것이다.
교단 차원으로 눈을 돌려도 답답한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교단 총대 역시 높은 연령대로 구성되고 있는데, 이는 총대 선출 관행이 큰 원인이다. 감리교를 예를 들면 기본적으로 총회 총대가 되려면, 연회에서 대표로 선출이 되어야 하는데, 관습적으로 목사든 장로든 안수를 받은 순서, 총회 경험이 많은 사람이 반복적으로 총회 대표로 선출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연령대가 높아지는 것이다. 총회 회의 시간도 문제인데, 노회, 연회 등 교단 회의들이 젊은 층이 출석할 수 없는 시간대인 평일에 보통 많이 열리기 때문에, 회의 참석이 힘든 젊은 평신도들이 선출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총대 선출에 대한 관행, 구체적인 제반 조건들이 바뀌지 않으면, 젊은 세대의 교단 내 의사결정과정 참여는 쉽지 않을 것이다.
실효성 있는 제도의 변화
한국교회와 교단 안에 젊은 리더십이 선출되기 위해서는 실효성 있는 제도와 구조개선과 함께 청년세대를 바라보는 교회의 인식과 문화개선이 시급하다. 우선은 연령에 상관없이 신앙적인 덕목과 열심을 갖춘 청년들, 젊은 세대들이 교회의 직분자로, 임원으로 세워질 수 있도록 제도적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장로 선출 과정을 완화하고, 나이 제한을 없애는 것이다. 또한 장로제도의 대의적인 성격을 강화하여, 단순히 신앙의 연수가 차고 연륜이 많은 이들만을 장로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세대를 대표할 수 있는데, 성별을 대표할 수 있는 장로를 세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더불어 교회와 교단 내 의사결정구조에 청년들과 젊은 세대가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자리를 보장해주는 것도 중요하다. 실제로 감리교 같은 경우는 50대 미안 총대 15% 할당 제도를 만들었는데, 이를 점차 늘려가고 보완해가면서 20~30대 젊은 세대도 교회와 교단 안에 의사결정 주체로서 참여할 수 있도록 길을 마련하는 것이다. 또한 각 지방, 노회 청년연합회를 활성화시키고, 청년연합회 임원들이 교단 내 의사결정 구조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할당제에 관해서는 비판점이 있다. 젊은 세대에게 특혜를 줄 수 있다는 것과 총회 경험이 없는 사람, 능력이 없는 사람이 할당제로 선출되면, 총회 수준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작정 특혜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교회를 구성한 세대 비율을 고려하여 납득 가능한 수준으로 다양한 세대의 총대가 구성되어야 한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처음부터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어디 있는가? 젊은 세대, 젊은 리더십들이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그리하여 총대로서 요구되는 전문성을 갖출 수 있도록, 기회와 권한을 주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미국장로교(PCUSA)는 총회 총대와 별도로 선교사, 신학생, 청년, 에큐메니칼 사역자로 이뤄진 자문위원단을 조직하는데, 이 자문위원단 구성원의 대부분은 청년이다. 지난 해 총회에는 149명의 자문위원 중에 127명이 17-23세의 청년이었다고 한다. 총회는 모든 표결에 앞서 자문위원이 투표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확인 한 후 총대들이 투표를 진행한다고 한다. 그리하여 자연스럽게 청년의견이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한국교회가 당장 총회 대표 젊은 세대의 몫을 배정하기 어렵다면, 이처럼 청년들, 젊은 리더십들의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장치라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 한국교회 청년들, 젊은 세대는 교단에 대해서 매우 냉소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특정한 세대, 소수의 그룹이 독점하는 의사결정 구조에 지쳐서, 아예 관심을 끊고 있는 상황이다. 교단 전체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청년을 바라보는 시선과 문화의 변화
실효성 있는 제도와 구조개선과 더불어, 청년들, 젊은 세대를 바라보는 교회와 교단의 시선과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 어떤 대상을 어떻게 호명하는가는 매우 중요하다. 어떤 대상의 변화는 호명을 바꾸는 일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교회와 교단들이 청년세대를“미래세대”로 호명을 해왔는데, 이는 청년세대를 교육의 대상, 아직 성숙하지 못한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청년은 교회의 미래가 아니라 교회의 현재이다. 세대, 나이만 다를 뿐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일원이고, 의사결정권을 가질 자격이 있는 성인이다.
계속해서 교회와 교단이 청년을, 미래의 주체로, 교육의 대상, 성장의 대상으로만 보다면, 청년들은 교회의 참여자가 아니라 주변인 관망자로로 남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 속에서 교회는 개혁과 변화의 목소리 담아내지 못하는 닫힌 공동체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교회와 교단이 그 동안 청년들을 어떻게 호명해왔는지 되돌아보면서, 청년들이 주체적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해주시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글을 마무리하며
한국교회 안에 청년리더십이 세워질 수 있을까? 글을 쓰고 나니, 현실적으로, 제도적으로 넘어서야 할 장벽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는 한국기독청년협의회가 할 일이 많다는 것. 교회를 세우고, 바람직하게 이끌어가는 일은 특정한 직분, 특정한 누군가의 책무가 아니다. 나이의 많고 적음과 상관없이 신앙의 성숙과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교회의 의사결정구조에 참여할 수 있다는 기본적인 전제를 토대로, 교회와 교단의 구조를 바꿔 가야 한다. 또한 청년들, 젊은 세대들이 미성숙한 교육의 대상, 미래 세대가 아니라, 교회의 구성원이며, 현재 세대라는 인식이 교회 저변에 깔린다면, 한국교회 안에 젊은 리더십, 청년 리더십들이 자연스럽게 세워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한국교회와 교단이 우리사회 청년정치의 새로운 바람, 세대교체의 시대적 요구에 응답하는 개혁과 갱신의 공동체가 되길 바라며 글을 마무리 한다.
하성웅 목사 (한국기독교청년협의회EYCK 총무)
'신앙의 자리 > 신학마당'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없지 않고 있다는 신비 (0) | 2022.06.20 |
---|---|
흡혈박쥐가 우리보다 낫네 (0) | 2022.05.26 |
공동체의 평화는 어디서 오는가 (0) | 2022.05.14 |
살아나신 예수님과 일으켜지신 예수님 (0) | 2022.05.12 |
[생활 성서] 내일도 살아있을 거라는 착각 (0) | 2022.04.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