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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말씀 : 착한 일에 돈을 쓰도록 가르쳐 주시오. 자기가 가진 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 언제든지 다른 사람과 기쁘게 나눌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가질 때 그들은 참된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딤전 6:18, 현대어)
요새는 그런 영화가 잘 안 보이는 것 같은데, 제가 어렸을 때는 ‘드라큘라’ 영화가 종종 나왔던 것 같습니다. 아니, 딱 한 번 봤을 뿐인데 인상이 너무 강렬해서 그런 영화를 많이 봤다는 기억의 왜곡이 일어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영화 속 드라큘라는 꼭 뒤에서 슬그머니 다가가 목덜미를 콱 깨물고 피를 빨더군요. 기분이 썩 좋지 않은 장면입니다.
그런 영화 탓인지, 저는 ‘흡혈박쥐’도 비슷한 방식으로 동물들의 피를 빨아 먹는 줄 알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작년 즈음이었나요. 책을 읽다가 그것이 저의 편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책에 따르면, 흡혈박쥐들은 목덜미를 콱 깨무는 게 아니라, 그저 동물의 몸에 발톱으로 살짝 상처를 내서 피를 빨더군요. “어설픈 지식은 편견을 낳는구나.” 이런 깨달음을 얻게 된 귀중한 책 읽기였습니다. 참고로 그 책은 동물학자 최재천 교수의 책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놀라운 습성 하나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책에 따르면, 흡혈박쥐들은 그렇게 빨아먹은 피를 이웃(?)과 나누어 먹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더더욱 놀랍게도, 그렇게 나누어 먹기 때문에 15년씩이나 살 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만약에 혼자만 배 부르려고 하면, 3년 정도밖에 살지 못할 거랍니다. 정말 의미심장한 일 아닌가요?
종종 느끼지만, 동물이 사람보다 나은 것 같아 보일 때가 있습니다. 사람은 많은 경우에 흡혈박쥐만도 못할 때가 있지요. 가령 전 세계 사람이 쓰고도 남을 물건을 생산하면서도, 누구는 최소한의 물건도 충분히 얻지 못해 허덕일 수밖에 없다는 이 체제는,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될 것입니다. 세상의 그 어리석은 풍조에 맘 편히 편승하는 ‘일부’ 교회를 볼 때 참으로 큰 슬픔을 느끼기도 하지요. 이러다가 ‘15년’을 지속할 수 있었던 인류의 역사가, ‘3년’만에 멈추게 되지는 않을까요?
물론 ‘흡혈박쥐와 같은 예수 정신’(?)으로 살아가는 목사님들과 교회들이 없지 않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가령 어제 만난 87학번 선배님이 그런 분이더군요. 두 시간이 넘게 대화를 나누는데, “아, 이 분은 권력과 명예를 움켜쥐려 하지 않으시는구나. 교인들이나 이웃들과 더불어 살아가시는 일에 진심이시구나.”라는 것을 느끼기에 충분했고, 얼마나 마음이 따듯해졌는지 모릅니다. 참 아쉽게도, 그런 분들은 소위 유명세가 없으시곤 하지요. 어쩌면 그것이 그런 분들의 운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외에 세월호 유가족과 아직도 함께하시는 그리스도인들, 혹은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에게 지속적인 관심과 연대를 하는 교회들이 있음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런 좋은 분들 때문에 파국이 지연되는 것만 같습니다.
기독교인을 누구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요? 교회 열심히 가는 사람도 좋고, 성령이 충만한 사람도 좋고,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사람도 좋고, 다 좋지요. 그러나 저는 바울의 생각을 빌려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나누게 된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움켜쥐지 않게 된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나누고 움켜쥐지 않으면 그 대가로 좋은 사람이라는 명예와 평판을 취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그 자체가 너무나 좋아진 사람 말입니다. 그 사람은 그런 의미에서 ‘자유인’일 것이고, 그 자유로움이야말로 하나님의 자녀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 아닐까요?
부자들에게는 교만하지 말고 또 곧 없어질 돈을 의지하지 말라고 일러두시오.
그런 것보다는 오히려 우리를 즐겁게 해주시려고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항상 풍족하게 주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자랑하고 그분만을 의지하도록 가르쳐 주시오.
착한 일에 돈을 쓰도록 가르쳐 주시오. 자기가 가진 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 언제든지 다른 사람과 기쁘게 나눌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가질 때
그들은 참된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하늘에다가 참 보화를 쌓는 것이며
이것만이 영원을 대비하는 안전한 투자입니다.
(딤전 6: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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