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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의 평화는 어디서 오는가

minkyo 2022. 5. 14. 11:39
[웹진 평:상 70호] 평.보.성 | 평화는 어디서 오는가 (빌립보서 4:1~3)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에게 무슨 격려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무슨 동정심과 자비가 있거든, 

2 여러분은 같은 생각을 품고,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이 되어서, 내 기쁨이 넘치게 해 주십시오. 

3 무슨 일을 하든지, 경쟁심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고, 자기보다 서로 남을 낫게 여기십시오.

(빌립보서 4:1~3)

 

     빌립보 교회는, 교회라면 마땅히 수행해야 할 평화로운 일들을 잘 해내고 있는 공동체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에게 무슨 격려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무슨 동정심과 자비가 있거든"(1절). 바울이 인정하는 바, 그들은 이미 격려하는 일, 사랑으로 위로하는 일, 성령으로 교제하는 일, 동정과 자비를 행하는 일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미 평화로운 일을 수행하는 그들에게 중요한 제안을 하나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경쟁심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고, 자기보다 서로 남을 낫게 여기십시오."(3절). 그 일들을 수행함에 있어서 서로간의 경쟁심이나 허영을 버리고, 서로를 겸손하고 낫게 여기는 태도를 주문하죠.

 

     특히 바울은 '무슨 일을 하든지' 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여기에서의 '무슨 일'은 1절에 언급한, 교회라면 반드시 수행해야 할 평화로운 일들을 말하죠. 애초에 바울에게는 공동체는 '무슨 일을 하냐'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무슨 일을 하든지' 서로에 대한 겸손하고 낫게 여기는 태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죠. '무슨 일'의 빈도를 하나 둘 늘려가는 것이 아니라, '무슨 일'을 수행하는 이들의 평화로운 관계가 구축되는 것이 진정한 공동체의 평화임을 강조합니다.

 

     이 질문을 던져보고 싶습니다. '공동체의 평화는 어디서 오는가?' 공동체의 평화는, 평화로운 일을 수행하는 데에서 오는 것이기 이전에, 평화로운 공동체가 되는 데에서 오는 것입니다. 아무리 공동체가 평화로운 일을 많이 수행한다고 해도, 그 공동체가 평화롭지 못하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공동체에 평화가 없고서는, 공동체가 많은 평화로운 일을 수행하는 것 자체가 평화로운 공동체와 동일시 될 수 없습니다.

 

     평화로운 공동체의 전제 조건은, 공동체를 이루는 서로 간의 관계의 평화입니다. "여러분은 같은 생각을 품고,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이 되어서, 내 기쁨이 넘치게 해 주십시오."(2절). 바울은 성도들에게 같은 생각, 같은 사랑, 한 마음을 요구합니다. 교회를 이루는 성도들 하나 하나가 모두 생각이 다르고 다양한 차이를 가진 존재들이라는 것을 바울은 당연히 알았나 봅니다.

 

     평화로운 공동체가 되기 위해 우리가 넘어야 할 산은 분명 존재합니다. 바로 서로 간의 '차이'를 어떻게 다루냐입니다.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공동체에서 '차이'로 인해 '불화'가 생기는 것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다만 서로 간의 차이를 어떻게 마주하냐에 따라, 불화는 '화목과 평화'로 이어지기도 하고, '불행과 분열'로 치닫기도 합니다.

 

     더욱이 우리는 서로 간의 '차이'를 대하는 데 많이 서툽니다. 많은 교회와 공동체들이 차이의 문제로 인해 서로 헤어지고 분열하는 것이 이를 증명하죠. 그것이 세대 간의 차이이든, 정치적 성향의 차이이든, 일을 수행하는 방식의 차이이든 말입니다. 이러한 차이는 때로 서로를 향한 낙인과 정죄로 이어집니다. 그저 차이로 인해 발생한 문제들이 '절대 악'으로까지 상정되기도 하죠. 충분히 해결될 수 있는 차이의 문제가, 더 이상 서로 함께 할 수 없는 치명적인 찰못으로 둔갑되기도 합니다.

 

     바울이 공동체에게 한 마음을 요구하는 것은 차이를 억지로 지우는 일이 아니라 차이를 전환시키는 일입니다. 그들에게는 이루어야 할 더 큰 목적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의 사랑을 전하는 일이며, 제국 속에서 평화로운 공동체를 세우는 일입니다. 차이를 지닌 존재들이 서로 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그럼에도 공동체로 부름 받은 공동의 목적을 향해 같은 생각과 한 마음이 되고자 서로 노력하는 것입니다. 비록 처음에는 차이로 인해 불화가 일어났을지 몰라도, 어느 순간 서로를 돌아보며 겸손하고 낫게 여기는 마음으로 나아갈 때, 불화하는 에너지는 평화의 에너지로 전환합니다. 그리고 서로 간의 차이는 더 이상 다툼과 분열의 힘으로 작동되는 것이 아닌, 공동체 안에서 서로 다양한 지경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이들에게 나아가 사랑을 전할 수 있게 하는 힘으로 전환됩니다.

 

공동체의 평화는 공동체가 평화로워지는 데에서 시작됩니다.

 

박형순 목사(희망교회/평화교회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