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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에 근거한 믿음과 사랑 (골로새서 1:4~6)

minkyo 2022. 12. 14. 11:38
[웹진 평:상 72호] 평.보.성 | 소망에 근거한 믿음과 사랑 (골로새서 1:4~6)
소망에 근거한 믿음과 사랑 (골로새서 1:4~6)
 
4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여러분의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해서 여러분이 품고 있는 사랑을 전해 들었습니다. 5 이 믿음과 사랑은 여러분을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두신 소망에 근거합니다. 이 소망은 여러분이 진리의 말씀 곧 복음을 받아들일 때에 이미 들은 것입니다. 6 이 복음은 온 세상에 전해진 것과 같이, 여러분에게 전해졌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를 듣고서 참되게 깨달은 그날로부터, 여러분 가운데서와 같이 온 세상에서 열매를 맺으며 자라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1:4~6)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의 신앙을 칭찬하는 것으로 골로새 교회를 향한 편지를 시작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여러분의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해서 여러분이 품고 있는 사랑을 전해 들었습니다. 이 믿음과 사랑은 여러분을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두신 소망에 근거합니다."(4~5절). 특히 예수님을 향한 그들의 믿음과, 사람들을 향한 그들의 사랑을 높이 평가하죠. 그 믿음과 사랑은 다름 아닌 '소망'에 근거한 것임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 그리고 사람들을 향한 사랑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닳고 닳도록 듣고 보고 배워온 기독교의 중요한 가치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그것들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죠. 근데 우리 안에 있다고 여기는 믿음과 사랑은,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요? 하늘에 쌓아 두신 소망에 근거한 것이라면야 참 좋겠지만, 가만히 자기 신앙을 성찰해본다면 우리는 뜻하지 않은 사실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소망이라고 생각해왔던 것들이 알고보니 소망으로 둔갑한 것들인 경우가 있다는 것이죠.
 
대표적으로 크게 두 가지 정도가 소망으로 둔갑되어 우리 안에 머물러 있습니다. 첫째는 '두려움'입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어려서부터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듣는 '천국 신앙'입니다. 예수 믿으면 천국에 간다는 자칫 소망스러워 보이는 이 말 속에는, 사실 불신의 끝은 지옥에 떨어지게 된다는 사실에 대한 공포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둘째는 '탐욕'입니다. '기복 신앙',  즉 예수를 믿은 결과 부를 얻고 성공을 이루게 되는 류의 스토리는 지금도 교회 안에서 인기를 끄는 대표적인 간증 서사이죠.
 
바울이 말한 이 '소망'이라는 것은 '두려움'이나 '탐욕'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의 믿음과 사랑의 근거가 되는 '소망'의 출처가 어디인지 확실히 밝힙니다. "이 소망은 여러분이 진리의 말씀 곧 복음을 받아들일 때에 이미 들은 것입니다. 이 복음은 온 세상에 전해진 것과 같이, 여러분에게 전해졌습니다."(5~6절). 소망은 '복음'으로부터 주어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모두를 구원하심으로 우리를 해방시키시고 자유케 하셨다'는 이 복음을 그들이 받아들이게 된 순간부터, 소망은 시작되었습니다. 이 소망은 결코 두려움이 될 수 없을 뿐더러, 탐욕이 될 수도 없습니다. 설령 인간은 두려움과 욕망을 가질 수밖에 없는 존재라 할지라도, 우리에게 전해진 이 복음은 우리의 두려움과 욕망을 몰아내고 참 소망으로, 그리고 소망에 근거한 믿음과 사랑의 열매를 맺도록 우리를 인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가진 믿음과 사랑은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박해하는 상황 속에서도,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사랑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대표적으로 빌레몬서에 바울이 빌레몬에게 도망친 종 오네시모를 다시 받아들이라고 요구하는 장면에 드러납니다. 빌레몬은 골로새 교회의 사역자입니다. 그들에게서 도망친 종을 용서하기를 넘어서서, 종 이상으로 사랑 받는 형제로 받아들이라고, 즉 사랑을 요구합니다. 그 당시의 상황을 생각해본다면 상식에서 벗어나는 요구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빌레몬과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이와 같은 사랑을 요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에게는 법 질서를 넘어서는 소망에 근거한 사랑이 이미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윤리적이고 도덕적이며 법적인 옳고 그름의 기준조차도 넘어설 수 있는 사랑 말입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과 사랑을 다시금 성찰해 봅니다. 절망으로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우리의 믿음과 사랑은 지켜질 수 있을까요? 두려움과 탐욕이 우리의 발목을 잡고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비관으로 인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잊지마시길. 우리를 구원하사 우리를 해방시키시고 자유케 하시는 그 복음이 우리의 삶에 실재로 머물러 있습니다. 우리에게 소망을 주십니다. 그 소망은 우리가 다시금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믿음을 잃지 않고 지속하도록 지키십니다. 그 소망은 우리가 모든 존재를 향해 사랑으로 나아가도록 도우십니다. 소망에 근거한 우리의 믿음, 우리의 사랑이 다시금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세워나갈 것입니다. 그 나라가 여기로 임하길, 여기에 이루어지길.
박형순 목사 (희망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