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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느림에 기대어>
- 김기석, 비아토르, 2022.
코로나 이후 세 번째 봄을 맞이한다. 많은 이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준 전염병이지만, 인간의 그칠 줄 모르는 욕망의 질주를 잠시라도 멈추게 해준 고마운 벗이기도 했다. 이제 코로나의 긴 터널의 끝에 서서 사람들은 들뜬 마음을 숨기지 않고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린 코로나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우리를 갑갑하게 했던 여러 제한적 조치들로부터 얼마간의 자유를 얻게 되겠지만 우리의 생각 하나, 행동 하나, 말 하나에 조심할 수밖에 없다. 자신을 삼갈 줄 아는 것이 신 앞에 선 인간의 모습일진데, 잊고 살았던 자기성찰적 삶을 이젠 좀 더 진득하게 살아내야 한다.
이제 서서히 사라져 가는 코로나 펜데믹.. 코로나가 예상보다 오래 지속되어 갈 때, 고통과 우울감에 사람들은 많이 지쳐있었다. 그러한 와중에 비록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자유롭게 만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소통하며 위안을 얻곤 했다. 그렇지만 직접 만남이 줄어들수록 사람들은 외로움에 젖어들기 마련이다. 전화나 SNS를 통해 주변에 있는 이들과 소통을 하곤 했지만 허전함과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청파교회 김기석 목사님께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교우들에게 진심 어린 마음으로 안부를 물으며 한 주간 머리를 스쳐 지나갔던 감정과 생각들을 담백하게 담아 보내신 목회서신(편지)을 우연히 볼 기회가 있었다.
‘그래! 이거구나!’
그동안 편지의 존재를 잊고 살았다. 어릴 적 국군 아저씨께 썼던 위문편지, 학창시절 좋아하는 여자친구를 생각하며 밤을 지새며 썼던 연애편지, 나를 낳아주시고 키워주시고 사랑으로 돌봐 주신 부모님께 고마움을 담아 썼던 부모님 전상서, 좌충우돌 청년의 시기를 보낼 때 든든한 힘이 되어주었던 친구에게 보낸 우정편지, 목회자가 되어 교우의 특별한 사정을 헤아리며 마음을 담아 썼던 목회서신... 나에게 있어 편지란 사랑의 마음이 깊어 마음 속에서 진하게 우러나온 곰탕이다. 특별히 직접 펜을 들고 써 내려간 편지는 삐뚤빼뚤한 글자 속에 오롯이 그 마음이 담겨 있곤 했다. 시대가 변하여 이젠 각종 SNS가 편지를 대신하고 있지만 여전히 편지가 주는 위안과 힘은 크다. 김기석 목사님은 이렇게 나에게 편지에 대한 옛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삼남연회(4.20-21)를 마치고 돌아와 보니 책 한 권이 도서관 책상 위에 놓여져 있었다. 반가움에 포장을 뜯어보니 반가운 이름이 쓰여있다. 김기석 목사님께서 따끈따끈한 신간 ≪사랑은 느림에 기대어≫를 보내신 것이다. 이 안엔 코로나 펜데믹을 힘겹게 살아가는 교우들을 향한 목사님의 진한 그리움이 담긴 편지가 가득 담겨 있다. 이 편지를 전해 받은 교우들은 지친 일상에서 시원한 생수를 마시는 듯 큰 힘과 위로를 얻었을 것이다. 나 또한 깊은 위로와 용기를 얻었으니...
이 편지들 안에는 일상에서 길어 올린 성찰과 묵상에는 세상을 대하는 목사님의 진정어린 태도가 담겨 있다. 인간 세상과는 무관하게 무심히 흘러가는 자연의 변화를 감지하고 그들이 건네는 메시지를 귀담아 듣는다. 복잡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혹시라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을 잃어버리고 살아갈까 자꾸만 자꾸만 자신의 안을 들여다본다. 지금의 생각에 확신을 가져다준 책의 문장을 다시금 찾아 읽어보고 교우들에게 공유하기도 한다. 편지글 한 마디, 한 문장마다 상대에 대한 깊은 애정과 배려가 담겨 있다. 교우들이 녹록치 않은 인생을 살아가며 혹여 절망하고 주저앉을까 싶어 어깨를 다독이며 슬며시 일으켜주는 위로가 있다. 김기석 목사님의 편지에는 이렇듯 생명에 대한 의지를 북돋아 주는 힘이 있다.
책의 제목이 인상적이다. ‘사랑은 느림에 기대어’.. 코로나는 주변을 살필 겨를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가는 인간들에게 ‘멈춤’을 가르쳐주었다. 인간의 욕망은 더 많이, 더 빨리, 더 화려하게 살라고 부추긴다. 그러나 그 질주는 멸망으로 향하는 길임을 우리는 안다. 그럼에도 욕망에 취해 있으면 길 저편에 있는 멸망이 보이지 않는다.
2021년 6월 10일 보냈던 편지글 <느림에 기대어>에서 김기석 목사님은 이렇게 쓰고 있다.
“잠시 멈추어 설 줄 알아야 합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말을 타고 달리다가 잠시 멈추곤 했다지요? 영혼이 따라올 시간을 주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의 미망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그 속에 깊은 진실이 있습니다. 분주함과 서두름 속에서는 지혜가 발생하기 어렵습니다.”(p.172-173)
그리고는 목사님의 마음에 새겨져 있는 책(칼하인츠 A. 가이슬러, ≪시간≫, 박계수 옮김, 석필, 2002)의 문장들을 소개한다.
“시간과 맞서 싸우려고만 하지 않고 시간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 싶은 자(‘시간은 내 편이다’라고 믿는 자)는 느림을 존중하고, 사랑하고 즐겨야만 한다.”
“천천히 가지 않으면 가까이 있는 것과 당연한 것을 간과하게 된다. 인내심을 가진 자만이 마음을 열고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느림은 무엇보다 사랑과 잘 맞는다.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빠름이지만 사랑에서 (그리고 평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느림이다. 사랑은 느림에 의지한다. 바쁘고 일이 많으면 우리는 사랑을 잃게 되고 사랑은 노동이 된다. 시간이 있고 시간과의 전쟁을 잊을 때만 사랑받을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다”
코로나 펜데믹을 살아가는 지혜로 목사님은 교우들에게 ‘느림’의 삶을 권면하고 있다. 그렇다. 사랑도, 평화도, 자유도, 구원도 느림에 의지해 있다. 느리게 걷다 보면 그동안 보이지 않는 것들이 눈에 들어오게 되고, 그러한 것들을 온 몸과 마음으로 받아 안고 느끼고 돌보게 되면 진정으로 사랑하게 된다. 느림의 길에서 만나는 사랑의 빛, 평화의 구름, 자유의 바람, 구원의 빗줄기가 우리네 삶을 풍요롭게 할 것이다.
코로나 이후 좀 더 아름답고 멋진 삶을 살고 싶다. 앵무새처럼 이전의 삶을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한 새로운 삶의 단서를 ‘느림’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느리게 걷자!
깊이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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