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이 전부가 아닙니다. 다음 세상이 있습니다.”라는 말을 할 때마다 으레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다음 세상이 물론 중요하지만 지금 세상도 중요하잖아요? 기왕이면 지금 세상도 잘살고 다음 세상에도 잘살면 더 좋죠.”라는 말입니다.
지금 세상은 물론 중요합니다.
왜 중요한가 하면, 지금 세상이 우리가 신자로 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이 아니면 우리가 어디 가서 신자 행세를 하겠습니까?
이 세상은 우리가 국물을 얻어먹어야 하는 곳이 아닙니다.
우리가 신자라는 사실을 나타내야 하는 곳입니다.
예전에 누군가 물은 적이 있습니다.
“부활 신앙이 뭐예요?”
“왜요?”
“부활 신앙이 있어야 한다는데, 부활 신앙은 기본적으로 다 있는 것 아닌가요?”
이다음에 부활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부활 신앙이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 날을 기준으로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이 부활 신앙이 있는 사람입니다.
지금 중요한 일이 중요한 일이 아니라 그 날 중요한 일이 중요한 일입니다.
지금 별일 아닌 것이 별일 아닌 것이 아니라 그 날 별일 아닌 것이 별일 아닙니다.
부활이 우리가 믿는 기독교 신앙의 근간입니다.
우리는 그 날을 기준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내용을 모르면 신앙이 이상하게 됩니다.
말로는 기독교 신자라고 하는데 부활에 관심이 없으면 신앙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학생이 학교에는 가는데 공부에는 관심이 없는 격입니다.
그런 학생이 학교 가서 무엇을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부활에 관심 없는 신자가 무엇을 하는지는 알 것 같습니다.
그 사람한테 있는 종교심이 이 세상일에 동원될 것입니다.
우선 세상을 걱정 없이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가 남보다 잘나야 하고, 자기 가족이 남보다 잘나야 합니다.
그 사람의 기도 제목이 다 이루어져도 하나님 나라는 조금도 확장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얘기는 사뭇 심각합니다.
어떤 사람의 기도 제목이 다 이루어졌는데 하나님의 나라는 조금도 확장되지 않았다면 그 사람이 신자라는 얘기입니까, 불신자라는 얘기입니까?
신자라고 하기에는 불신자 같고 불신자라고 하기에는 신자 같은 사람입니까?
- 강학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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