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영도에 위치한 흰여울교회입니다.

신앙의 자리/믿음의 자리

하루에 한 말씀

minkyo 2022. 5. 14. 11:45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에 십자가 밑에서는 로마 군병들이 예수님 옷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입고 다니는 겉옷은 네 가지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겉옷과 허리를 두르는 천, 머릿수건 그리고 샌들입니다.
로마 군병 넷이 이 네 가지를 하나씩 나눠 가졌습니다.
이렇게 겉옷은 한 몫씩 나눠 가졌는데 속옷 하나가 더 남았습니다.
그것을 네 조각으로 찢어버리면 누구에게도 소용이 없는 물건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제비를 뽑아서 한 사람이 갖기로 했습니다.
오래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부교역자로 사역하던 교회 아동부에서 부활절 행사로 삶은 계란과 전도지를 들고 노방 전도를 나갔던 적이 있습니다.
제 딸도 아동부였는데, 노방 전도를 나갔던 딸로부터 아주 의미 있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건 필요 없어. 이것만 줘!” 하고, 전도지는 안 받아 가고 계란만 받아 가더랍니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에는 재미있다고 웃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웃을 일이 아니었습니다.
전도지에 적힌 내용이 자기에게 얼마나 중요한 내용인지를 모르니 요깃거리에 불과한 계란이 오히려 더 요긴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모르면 겉옷을 나누고 속옷을 제비 뽑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손이 어떤 손입니까?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면 나환자도 낫는 손입니다.
귀 먹은 자의 귀에 손을 대시고 “에바다” 하셨을 적에는 귀가 열리게 했던 손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셨을 적에는 가는 곳마다 병자들이 모여들었는데 예수님의 손길이 닿은 병자마다 고침을 받지 못한 병자가 없었습니다.
로마 군병들은 그런 예수님의 손을 자기들의 손으로 직접 붙잡았습니다.
그래서 무엇인가를 얻기는 얻었습니다.
남들은 나병을 고침 받고 맹인이었다가 눈을 뜨고 귀신 들렸다가 정신이 온전하여지고 심지어는 죽었다가 살아나기도 하는데 고작해야 옷 조각 하나씩 얻었습니다.
대체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왜 있는 것입니까?
주님의 손을 얼마나 오래 만졌느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애초부터 무엇에 관심이 있었는지가 문제입니다.
얘기는 이상합니다만 이들은 그렇게 해도 됩니다.
믿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예수님의 제자 중의 누군가가 그렇게 했다면 경악스러운 일입니다만 로마 군인이 그렇게 한 것이 뭐 그리 대수로운 일이겠습니까?
제가 부교역자로 근무하던 교회 아동부에서 부활절 계란을 들고 노방 전도를 갔을 때의 얘기를 한 가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계란과 전도지를 줬더니 전도지는 필요 없다고 하면서 계란만 받아간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야! 왜 계란만 주고 소금은 안 주냐?” 하고 묻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 얘기를 상당히 교훈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전도지를 받아 들고서 여기에 적힌 내용 말고 더 자세한 내용은 없느냐고 묻는 사람은 없어도 계란을 받아 들고서
소금을 찾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는 법입니다.
그냥 계란만 먹는다고 해서 무슨 탈이야 나겠습니까만 그래도 계란을 먹으려면 소금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구원이 필요한 죄인이다”, “우리의 죄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다” 하는 골치 아픈 사실은 몰라도 계란을 먹으려면 소금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압니다.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야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우리에게 진실로 필요한 것은 전도지에 기록된 내용이라고 말은 하면서도 실제 세상을 살아가면서는 당장 먹을 수 있는 계란과 또 계란을 먹을 때 필요한 소금을 더 소중하게 여기면서 살아간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런 사실을 감안하면 예수님의 겉옷을 나누고 속옷을 제비 뽑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아닌 로마 군인이라는
사실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입니다.
만일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런 일을 했더라면 대체 어떻게 할 뻔했습니까?
그야말로 기가 막힌 일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로마 병사들은 어차피 예수와 관계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이 무엇을 하고 계신지에 대해서도
굳이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습니다.
어차피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죽을 것입니다.
그런데 혹시 우리는 예수 이름으로 한 자리에 모여 있으면서도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사역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고 자기 욕심과 자존심을 챙기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닙니까?
이들이 예수와 같이 지낸 시간이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는 모릅니다.
어쩌면 한 시간이나 두 시간 혹은 그보다 조금 더 많은 시간을 같이 보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예수님으로 인해서 이득을 얻기도 했습니다.
각자 천 조각 하나씩 챙겼습니다.
그 사람들은 그렇다 치고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를 믿고 나서 지금까지 혹 20년, 혹 30년 동안 무엇을 얻었습니까?
예수님께서 주시고 싶어 하시는 것을 얻었습니까, 아니면 평소에 얻고 싶어 하던 것을 얻었습니까?
 
 
-강학종 목사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