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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올해 초에 애들 둘이 독립을 해서 지방으로 내려갔다. 두 어 달 정도 헤어지는 연습을 했다. 하지만 30년을 넘게 같이 살아온 삶의 감각은 비어있는 공간을 볼 때마다 공명음을 일으킨다. 언제든지 연락이 되지만, 차를 타고 2시간도 되지 않는 거리가 만드는 파장이 쓸쓸함을 건드린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내릴 때마다 제 방에서 나와서 말을 걸던 딸의 음성이 들리는 듯 하다. 무뚝뚝하지만, 발동이 걸리면 기상천외한 스토리로 내 이야기를 압도하던 아들의 이야기도 그립다.
2.
프로이트에 따르면 ‘근원적 생명의 에너지’인 ‘리비도’는 점착성이 있다고 한다. 이 끈적끈적한 정신적인 에너지는 같은 시공간을 점유하는 대상에게 무/의식적으로 들러붙는다. 이렇게 들러붙어 있는 에너지 덩어리가 떨어질 때 상실이라는 ‘작은 죽음’을 체험한다. 그렇기에 리비도의 분리를 위해서는 애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좁은 시공간을 벗어난 대상에 대한 리비도의 허방다리가 바로 그것이다. 애도의 마음을 품고 기도하던 어느 날, 이 그리움은 다른 어떤 것으로 대체될 수 없는 아이들의 고유성에 기인하게 됨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헨리 나우웬은 <영혼의 양식>에서 이 고유성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3.
“모든 인간은 혼자입니다. 어떠한 사람도 우리가 느끼는 것과 똑같이 느끼지 못하며,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똑같이 생각하지 못하며, 우리가 행동하는 것과 똑같이 행동하지 못합니다. 우리 각자는 독특한 존재이며, 혼자 있음은 우리의 독특한 존재의의 다른 면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우리의 혼자 있음을 외로움이 되게 내버려두느냐, 또는 그것이 우리를 고독으로 인도하도록 허용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혼자 있음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고독은 평화스러운 일입니다. 혼자 있음은 우리로 하여금 절망 속에서 남에게 매달리게 하고, 고독은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의 존재의 독특성을 존경하게 하고, 공동체를 만들어 내게 합니다.
우리의 혼자 있음을 외로움이 되지 않게 하고 고독으로 성장하게 하는 일은 평생에 걸친 싸움입니다. 이 싸움을 위해서는 누구와 함께 있을 것인지, 무엇을 공부할 것인지, 어떻게 기도할 것인지, 그리고 언제 조언을 구할 것인지에 관하여 의식적인 선택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현명한 선택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이 사랑 속에서 자랄 수 있는 고독을 찾게 될 것입니다.”
4.
리비도의 대상이었던 존재를 만나고 헤어짐은 필연적인 과정이다. 이 과정을 통해 근원적 존재를 향한 갈망을 재발견하고, 외로움을 고독으로 전환하는 것이 영적 성숙일 것이다. 아이들의 존재는 그 갈망을 다시금 일깨우고 부추기는 하나님의 은총이며 그 통로였다. 그리움과 애도를 통해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은 나의 애도와 겹쳐지게 된다. “당신은 우리를 당신을 향해서 살도록 창조하셨으므로 우리 마음이 당신 안에서 안식할 때까지 편안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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