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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자리/신학마당

<영적여정의 오솔길> ‘어둠’의 성인

minkyo 2022. 4. 12. 08:37

 

주간 평화교회 99호| <영적여정의 오솔길> ‘어둠’의 성인

 

1.

십여 년 전쯤에 어떤 포럼에 참석했다고 들었던 이야기이다. 모 신학대학 교수가 “마더 데레사는 신앙 없이 죽었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했다.”라는 말을 공개적인 자리에서 했다. 나름 한국에서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신학교에 소속된 교수의 공개적 발언은 자못 충격적이었다. 그 발언을 듣고 나서 이런 일련의 질문이 계속 떠올랐다. 20세기의 성인이라고 일컬어지는 마더 데레사의 구원 문제를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일까? 구원에 대한 문제는 전적인 하나님의 소관인데 그 교수는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된다는 생각일까? 개신교의 구원에 대한 교리적 신념이 다른 사람의 구원 문제를 마음대로 판단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

 

2.

그 교수는 자신의 이야기가 마더 데레사의 편지에 나온 내용에 근거한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마더 데레사는 캘커타 빈민가로 들어가 가난한 이들을 위한 헌신하는 삶을 살지만, 영적으로는 지속적인 메마름과 갈증을 호소하였다. 브라이언 콜로제이축 신부는 마더 데레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본향으로 돌아간 이후 그의 편지를 엮어 <마더 데레사 나의 빛이 되어라>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마더 데레사의 편지들에는 하나님에 대한 깊은 갈망에도 불구하고, 어느 곳에서도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는, 어디에서도 희망을 찾을 수 없다는 깊은 어둠속에 있다는 표현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아래 글들은 그 책에서 인용한 것이다.

 

3.

“제가 예수님을 원하면 원할수록 예수님은 저를 덜 원하십니다. 저는 예수님이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방식으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싶지만 예수님과 멀어진 느낌, 끔찍한 공허함, 하느님이 제 옆에 계시지 않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257-8쪽)

 

“저의 하느님, 제가 누구이기에 저를 버리십니까? 당신 사랑의 자녀인 제가 이제는 가장 미움받는 자녀, 당신께서 원치 않아 버리시는 자녀, 사랑받지 못한 자녀가 되고 있습니다. 저는 애타게 부르고 매달리며 간절히 원하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습니다. 매달릴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아무도,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혼자입니다. 어둠은 너무나 짙습니다. 그리고 저는 혼자입니다. 아무도 저를 원하지 않으며 저는 버림받았습니다.”(294쪽)

 

“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하느님을 잃었기 때문에 영원한 고통 속에 살고 있으며, 하느님을 가질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이라도 있다면 그 모든 고통을 견딜 수 있다고들 합니다. 저는 그처럼 끔찍한 상실의 고통을 영혼으로 느낍니다.”(303쪽)

 

“신부님, 49년이나 50년 이래로 이 끔찍한 상실감, 말할 수 없는 어둠, 외로움, 하느님을 향한 끊임없는 갈망이 시작되었고, 이 모든 것은 제 마음 속 깊은 곳을 괴롭혔습니다. 어둠은 너무나 심해서 저는 마음으로도 이성으로도 아무 것도 보지 못합니다. 제 안에는 하느님이 안계십니다.”(330쪽)

 

4.

캘커타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헌신적인 구제 활동을 계속하고 있었지만, 기도생활을 놓치지 않고 하고 있었지만 영적 어둠은 마더 데레사가 본향으로 돌아갈 때까지 계속 되었다. 이런 깊은 영적 어둠에 대한 고백만을 본다면 신앙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고백을 불신앙으로 보는 것은 편협한 이해에 불과한 것이다. 영성 생활의 전통 속에는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 것과 같은 영적 메마름과 어둠 마저도 하나님과 더 깊은 사랑을 위한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부정의 길(Apophatic way)’에 대한 이해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해는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영원을 체험할 때 인간의 이성과 감정이 이를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5.

부정신학의 대표적인 저서인 <어둔 밤>을 쓴 사람은 십자가의 성요한이다. 그는 자신이 소속된 가르멜 수도회를 개혁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자신이 소속된 수도회의 수사들에게 체포되어 몇 개월 동안 이루 말할 수 없는 수모를 경험한다. 차라리 신앙이 없는 사람들이나, 자기가 소속된 수도회가 아닌 다른 곳이었다면 그 수모는 덜했을지도 모른다.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에게 당하는 일은 그래서 내면적으로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 체험은 이후 영적 어둠을 이해하는 귀중한 토대를 마련한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영혼을 하나님과 일치시키기 위하여 ‘어둔 밤’이라는 정화하는 선물을 준다고 한다. 이때 감각과 영의 정화를 겪으면서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게 된다. 십자가의 성 요한의 글은 마더 데레사의 영적 어둠을 깊이 있게 이해하게 해준다.

 

6.

마더 데레사의 어둠 체험은 지속되었지만, 그는 계속해서 헌신적으로 사랑을 전하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런 고백을 한다.

 

“제 몸과 마음, 영혼은 하느님에게만 속해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분 사랑의 자녀인 저를 원하지 않는다며 버리셨습니다. 하느님의 처분에 따를 것,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하느님이 원하시는 만큼 저에게 하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제 어둠이 다른 영혼에게 빛이 된다면, 아니 그 누구에게 무엇도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저는 들판에 핀 하느님의 꽃이 되어 더없이 행복합니다.”(333쪽)

 

7.

자신의 어둠마저도 다른 사람들에게 빛이 될 수 있다면, 아니 아무에게도 어떤 빛이 되지 못하더라도, 보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들판에 핀 야생화가 된다 하더라도 하느님에게만 속해 있다면 더없이 행복하다는 마더 데레사의 고백...... 영적으로 어둔 밤을 체험할 때,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느껴지고, 모든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메아리처럼 공허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그럴 때에도 끊임없이 기도하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마더 데레사의 모습은 우리에게 이정표를 제시한다. 마더 데레사처럼 살지 못한다 하더라도, 어둠 속에서 자기가 처한 일상 가운데 작은 빛을 비치는 것, 그것이 더 깊은 영성 속으로 들어가는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