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영도에 위치한 흰여울교회입니다.

신앙의 자리/믿음의 자리

쉽게 보는 어려운 성막 - 4

minkyo 2022. 3. 2. 16:26
성소 지붕은 네 겹으로 되어 있습니다.
제일 처음에는 그룹을 공교히 수놓아 만든 알록달록한 휘장입니다.
그것을 염소 털로 덮습니다.
그것을 붉은 물들인 숫양 가죽으로 덮고 다시 해달 가죽으로 덮습니다.
제일 바깥에 있는 것이 해달 가죽입니다.
성소를 밖에서 보면 해달 가죽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성소 안에 들어가면 사방 벽이 다 금이고, 그 안에 있는 기구들도 다 금인데, 그것은 안에 들어왔을 때의 얘기입니다.
밖에서 보면 비바람에 찌들고 모래 바람에 꼬질꼬질하게 때가 절은 해달 가죽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이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이 예수를 보는 모습이고 교회를 모르는 사람들이 교회를 보는 모습입니다.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를 보려면 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교회 다니지 않아도 예수라는 사람은 다 압니다.
공자, 석가, 소크라테스와 더불어 세계 4대 성인 중의 한 사람으로 예수를 아는 정도는 굳이 교회에 다니지 않고 세계사 책만 보아도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 해달 가죽을 벗기면 붉은 물들인 숫양 가죽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보혈을 상징합니다.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고 오직 교회 안에만 구원이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 기독교가 종교로서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요컨대 해달 가죽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한 칸 더 들어와서 예수님의 대속사역을 알아야 우리가 믿는 기독교가 종교로서의 의미가 있게 됩니다.
거기서부터 구원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아담 하와가 범죄했을 때 그들은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만들었었습니다.
하지만 무화과나무 잎으로 된 치마에 내구성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룻밤만 자고 일어나도 도로 벌거벗은 수치를 드러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가죽옷을 만들려면 짐승 가죽이 있어야 합니다.
아담 하와의 범죄로 인해서 죄 없는 짐승 한 마리가 죽어야 했습니다.
죄로 인한 대속은 창세기 때부터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이렇게 구원을 얻었으면 그다음에 나타나는 것이 염소 털입니다.
이 내용을 이해하라면 이스라엘의 절기인 속죄제를 알아야 합니다.
히브리력으로 7월 10일이 속죄일입니다.
이때 염소 두 마리를 택해서 한 마리는 번제로 드리고 한 마리는 멀리 광야로 쫓아냅니다.
이스라엘 온 회중의 죄를 염소한테 지고 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 염소가 광야로 감으로서 이스라엘 회중은 죄하고 관계가 없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온 회중의 죄를 짊어진 그 염소는 광야로 가서 결국 들짐승에게 찢겨 죽게 됩니다.
시편에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시 103:12)”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이 말씀 그대로입니다.
동과 서가 전혀 관계가 없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우리에게서 멀리 격리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상징하는 행위가 염소를 광야로 보내는 것입니다.
결국 염소 털로 된 성막 덮개는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말 그대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우리가 만나는 장소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일단 붉은 물들인 수양 가죽에서 구원은 얻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으로 모든 신앙 여정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구원 얻은 그다음 단계가 있습니다.
구원을 얻었으면 최대한 죄에서 멀어져야 합니다.
그다음, 염소 털 안에 있는 것은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흰색)의 네 가지 색깔로 그룹을 공교히 수놓아 만든 휘장입니다.
그룹은 천사를 말하는데, 천사 중에서도 특별히 하나님의 친위대입니다.
그러니 그룹이 수놓아져 있다는 얘기는 하나님이 거기 계시다는 뜻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이렇게 볼 때 네 겹으로 된 성소 덮개는 내부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점점 더 아름다워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구원이 없던 상태에서 구원을 얻고, 점점 더 죄를 멀리하며 신앙이 깊어져서 결국 하나님을 직접 뵙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소 내부에 들어가서 그 안에서 바라보는 천장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쉽게 보는 어려운 성막- 강학종 목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