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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박 4일간 지리산에서 침묵 피정이 있었다. 대침묵 둘째 날 점심이 마침 설거지를 담당하는 날이었다. 설거지를 마치고 나오니, 때마침 잘 내려진 원두커피가 있었다. 텀블러에 커피를 담고, 킷캣 하나를 들고 마당으로 나왔다. 나무 그늘 밑 의자에 앉으니, 약간의 노동이 선서하는 근육의 나른한 기운이 묘한 즐거움을 선사했다. 비온 다음 날이라 풀냄새를 머금고 불어오는 바람이 온 몸을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있었다. 새소리를 들으면서 킷캣을 한 입 베어 물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따뜻한 커피에 녹아내리는 초코렛의 맛을 느끼는 순간, 교부 오리게네스(c. 184- c.254)의 고백이 떠올랐다.
2.
“주님께서 청각, 시각, 촉각, 미각, 그리고 모든 감각을 채우십니다. Christ filling the hearing, sight, touch, taste, and every sense.”
3.
주님께서 나의 오감을 채우신다는 통찰은 바로 그 순간에 영원이 나의 온 몸을 통과하며 남기는 흔적과 같았다. 전날 점심 때 부터 시작한 대침묵이 번잡하고 수다스러운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을까? 샬렘을 통해 영성훈련을 시작하면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침묵의 힘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 힘을 많은 사람들이 접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적어도 신학교에서만이라도, 그리고 목회자들에게는 침묵의 시간은 필수불가결한 시간이라 여겨졌다. 끊임없는 말의 향연이 주는 공허함과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침묵의 충만함이라는 이 미묘한 대비.
4.
침묵 시간이 광물이나 식물과 같이 고요함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점심시간 이전까지만 해도 말로 할 수 없는 분노와 고통의 시간이 있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시작되었다. ‘사랑’이라는 말을 묵상하는 동안에 ‘사랑의 하나님’은 끊임없이 사람에게 ‘사랑을 고백하신다’는 깨달음이 왔다. “죽도록 너를 사랑한단다.....” 이 말씀이 마음에 떠오르는 순간 그 고백에서 도망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지나간 일들이 동시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그럴 수도 있지’하고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던 일들 속에서 ‘나’를 무시하고 짓밟으려고 한다는 것을 이후에 느낀 몇 가지 사건들 때문이었다. 혼신의 힘을 다해서 해왔던 일들을 가볍게 무시하고, 우습게 대하던 사람들의 얼굴들이 떠오르면서, 그들을 사랑해야 한다는 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5.
고백을 듣다.
죽도록 사랑한다는
그분의 말씀
듣기 싫었다.
사랑한단 이야기
나도 죽어야 할까 봐
6.
침묵 속에서 내 영혼을 물어뜯고 그르릉거리는 사자의 소리를 들었다. 한참 동안을 그 모습과 소리를 고통 가운데 지켜보고 있었다. 그저 단지 지켜보고 있었다. 도망가지도 않고, 싸우지도 않은 채로......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그 자리에 있었다. 침묵의 시간이 길어지자 그르릉거리는 소리는 잦아들었고, 물속에 퍼진 잉크 방울 마냥 형체가 풀어져 버렸다. 힘겨운 전투 후의 점심시간이었다. 대침묵은 야수와 같이 포효하기도 하고, 고요한 호수 위에 불어오는 여리디 여린 바람과도 같았다.
7.
오감이 저절로 가득 채어질 리 없다.
그 안에 수많은 울부짖음
그 안에 눈물 몇 방울
그 안에 고요 한 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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