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평화교회 108호| <영적여정의 오솔길> 발음할 수 없는 이름을 발음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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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가 리처드 로어는 그의 저서 <벌거벗은 지금>에서 신의 이름은 발음이 불가능한 이름이고, 그 이름을 어떻게 부르는지 알려고 하는 것은, 출애굽기 20장 7절의 말씀대로 ‘헛된’ 짓이라고 하였다. 한글 성경에서는 이를 ‘망령되이 일컫는’(개역), ‘망령되게 부르는’(개역개정), ‘함부로 부르는’(공동번역, 표준새번역, 공동번역 개정, 새번역) 일로 번역하였다. 영어 성경 킹제임스 버전, ASV는 ‘in vain’(헛된)으로 번역하고 있다.
하지만 모세는 불경하게도 출애굽기 3장 13절에 그 ‘헛된’ 일을 감행한다. “그들이 저에게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을 터인데, 제가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합니까?” 고대사회에서 ‘이름’은 단순한 호칭 이상의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중에 이름을 안다는 것은 그 정체성을 안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을 알려고 하는 것은 인간의 이성으로 도저히 파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정체성을 알려고 하는 짓이며, 컵 하나를 들고가서 바닷물을 통채로 담으려는 시도인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은총으로 자신의 이름을 가르쳐 주신다. “나는 스스로 있는 나다.”(표준새번역 출 3:14)
출애굽기 3장 14절의 “나는 스스로 있는 나다”는 말로 번역된 히브리어 원문은 4개의 자음으로 'יהוה' 표기된다. 이 낱말은 영어 알파벳으로 ‘YHWH 혹은 YHVH’로 표기하며, 쓰인 그대로 모음이 없었다. 유대인들은 이 낱말을 거룩하신 분의 칭호이므로 발음하지 않고, ‘나의 주’라는 뜻인 ‘아도나이(Adonai)’로 읽었다. 이후에 학자들은 ‘아도나이’ 나오는 모음(A-O-ai)을 그대로 연결해서 ‘YeHoWah’(여호와 또는 예호바)등으로 발음하였다. 현대의 성서학자들은 ‘여호와’라는 발음보다 ‘YaHWeH’(야훼)라는 발음이 원 발음에 가까울 것이라고 추론하였다.
하지만 최근 연구에 따르면 ‘야훼’라는 발음되는 ‘YHWH’는 모음을 붙여서 발음되는 이름이 아니라 호흡되는 소리를 나타낸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코로 숨을 쉴 때 ‘YH’는 ‘들숨에 나는 소리’이며 ‘WH’는 ‘날숨에 나는 소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리처드 로어는 ‘세상에 태어나면서 맨 처음 한 일이 그분 이름을 부르는 것이고, 세상을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할 일이 그 분 이름을 부르는 것’(<벌거벗은 지금> 28쪽)이라고 말한다. 아기의 첫 번째 외침이 하나님의 이름이며, 우리가 깊은 고뇌 속에서 신음하며 한숨을 쉴 때, 그 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며, 무신론자조차도 그들의 숨결로 끊임없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으며, 우리가 다른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을 때, 나의 부르짖음이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며, 세상을 떠날 때 마지막으로 부르는 이름이 그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리처드 로어는 덧붙여서 “그 숨은 하느님께서 아담의 코에 불어넣으신(창 2:7) 바로 그 숨이고,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마지막으로 거둔(요 19:30) 바로 그 숨이고, 부활하신 다음 제자들을 향하여 평화와 용서와 성령으로 내쉬신 바로 그 숨(요 20:22-23)”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 우리가 쉬는 이 숨은 나의 것이 아니며, 바로 하나님의 숨이며, 이 숨은 하늘과 땅 바다의 동물과 식물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까지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이 함께 나눠 가진 숨이며, 이 숨을 쉬게 하기 위하여 태양과 땅, 물과 공기가 함께 있어야 하는 바로 그 숨이며, 태초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할 그 때까지 함께 쉬어야 할 숨인 것이다.
그래서 이 숨을 쉰다는 것은 내가 당연하게 가져야 할 것을 가진 것이 아니라, 나의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질 수 없는 것을 내가 거저 받았다는, 그래서 그 생명에 내가 의존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경이로 감탄해야 할 숨이다.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이 놀라운 신비에 감사를 표하자.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마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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