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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를 기다리며 연대합시다!

minkyo 2022. 5. 14. 11:40
[웹진 평:상 70호] 우당탕탕 장애투쟁기 | 그 ‘때’를 기다리며 연대합시다!

 

그 ‘때’를 기다리며 연대합시다!

 

     지하철 타기 선전전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지하철 타기 선전전이란 장애인이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것입니다. 두 가지 방식으로 선전전이 진행하는데요. 첫 번째 방식은 지하철을 한 줄로 장애인의 속도에 맞게 타는 방식입니다. 두 번째 방식은 승강장과 지하철 사이에 휠체어를 걸치고 막는 방식입니다. 이 두 가지 방식을 하다 보면 서울교통공사에서 “현재 역에서 장애인단체 시위로 인해 지하철이 상당시간 지연되고 있습니다. 이에 양해바랍니다”라고 방송을 합니다. 이와 동시에 시민들은 선전전을 하는 장애인에게 욕설합니다. “장애인이면 다야? 다 죽어버려, 이래서 장애인은 안 돼.” 등 짜증이 섞인 욕설로 장애인 혐오를 합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지연’이라는 단어입니다. 지연은 시간을 의미합니다. 20분 정도 지하철 선전전을 진행해서 시간을 지연시키고 멈춘다는 의미입니다. 선전전을 하는 장애인에게 시민들은 욕을 합니다. 20분 정도 늦는데 말이요. 장애인은 21년 동안 아니, 평생을 이동하지 못해서 집에 있거나, 시설에서 지냈어야 합니다. 그들이 화를 내면서 욕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본인들의 시간을 빼앗았다는 생각에 화가 나서 욕을 했을 것입니다. ‘시간’은 이 세상에서 무엇과 연결되었을까요? 신자본주의에 사는 그들에게 돈과 연결된다고 생각합니다. 일분일초가 자본으로 계산되는 세상, 자본이 무한 증식하는 세상이 바로 신자본주의니깐요. 

 

     그러면 지연=시간=돈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지하철을 탄 사람들은 이런 말도 합니다. “직장에서 해고당하면 네가 책임질 거냐?”고 말이죠. 그동안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막고, 행진할 때는 이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본인이 손해 본다는 생각에, 빨리 직장에 가서 자본을 증식해야 하는데 지하철이 장애인들로 인해 멈췄다는 사실에 욕설했다고 봅니다. 여기서 집고 가야 할 문제는 장애인은 21년 동안, 아니 평생 시간이 멈춰있었다는 점입니다. 이동권이 지켜지지 않아, 자본주의가 원하는 ‘몸’이 아니라서 시설로 격리되고, 집에서 외출을 한 달에 다섯 번 하는 게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지하철 선전전이 갖는 의미는 큽니다. 장애인이 직접 외출하여, 지하철을 막고, 시간을 멈추는 행위는 단순히 시간을 멈춘다는 것뿐만 아니라, 비장애인 중심으로 굴러가는 시간, 빠르게 자본을 증식해야 하는 시간을 멈췄다는 걸 의미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빼앗긴 주체성을 ‘회복’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격하고, 시간을 멈추는 선전전을 해야지만 주체성이 들어 나는 게 아이러니합니다. 지하철을 탄 시민들의 욕은 그동안 미처 보지 못한 광경일 것이고, 장애인을 봤지만, 자신에게 피해를 주는 장애인을 처음 목격해서 하는 모순의 말입니다.

 

     시간의 의미를 기독교적으로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요? 기독교에서 유명한 시간이 있습니다. ‘카이로스’의 시간인데요. 성서에서 ‘때’, ‘시간’을 크로노스, 카이로스 두 가지로 나눕니다. 크로노스는 하루 24시간, 한 달 30일 딱 정해져 있는 시간입니다. 반면 크로노스는 ‘때’라고 합니다. 주관적인 시간으로 말할 수 있겠습니다. “천 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 년 같다.”라는 말이 대표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시간은 크로노스입니다.

 

     아마 지하철에 탄 사람들은 발을 둥둥 구르며 “언제 출근하지, 지각하면 안 되는데”란 생각을 하면서 20분을 20년처럼 느꼈을 것입니다. 지각하면 회사에 해고당한다는 사고에서, 또는 오늘 회사에 가서 자본을 증식해야 하는데 장애인들 때문에 손해가 얼마인지 계산해서 말이죠. 반면 장애인은 20분이 1분처럼 느껴졌을 것입니다. 지하철을 타지 못한 장애인, 외출하지 못한 장애인은 지하철을 멈추는 20분이 빠르게 지나갔을 것입니다. 21년간 이동하지 못해 교육받지 못했고, 교육받지 못해 노동하지 못했고, 노동하지 못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조차 빼앗겨 버린 시간을 생각하면서 20분이 1분처럼 빠르게 지나갔을 것입니다.

 

     또 다른 점은 카이로스의 시간을 때라고 합니다. 기독교인들에게 때란 무엇인지 생각해 봤습니다. 아마 그들이 기다리고 있는 재림예수가 이 땅에 다시 올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들에게 아니, 우리는 재림예수를 기다립니다. 이 세상에 악한 것은 없애고, 새로운 나라,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기에 재림예수를 기다리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장애인도 기다리고 있는 때가 있습니다. 그 ‘때’는 아마도 장애해방이 아닌가 싶습니다. 비장애인 중심으로 굴러가는 세상이 물러나고, 장애인이 마음껏 이동하며, 교육받으며, 노동하며,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때 말이죠.

 

     마지막으로 우리 함께 함께 연대하며 그 ‘때’를 기다립시다. 재림예수가 오실 때를, 장애해방이 올 때를 기다립시다. 그래서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세상이 오기를,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을 향하여 한 발짝 나아갑시다!

 

유진우(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