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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평화/생명 평화

향모는 선물이기에 팔 수 없다.

minkyo 2022. 1. 25. 20:33

향모는 선물이기에 팔 수 없다.

<향모를 땋으며>, 로빈 월 키머러, 노승영, 에이도스, 2013

 

“우리가 향모를 팔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우리에게 그냥 주어진 것이기에 남들에게도 그냥 줘야만 한다.”(50쪽)

향모는 선물이기에 팔 수 없다. 호혜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값을 매길 수는 없다. 정확한 보상과 적절한 대가가 미덕인 시대이지만 신성한 부족 제의에서 사용되는 향모에 값을 매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식물생태학자인 로빈 월 키머러는 대학에서 이성과 합리성이라는 말로 포장된 이주민들의 식물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그 지식은 그가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삶 속에서 배워온, 자신의 포타와토미 네이션의 조상들이 알려주었던 자연과의 관계와 달랐다. 오대호 주변 토착민들이 믿는 세계에선 하늘에서 떨어진 한 여인이 가져온 여러 씨앗을 사향뒤쥐의 숭고한 희생으로 덕분에 거북이 등딱지에 옮겨 심었고, 이 씨앗들이 자라나 거북섬(아메리카 대륙)을 푸르게 뒤덮었다. 떨어지는 그녀를 받아주고, 그녀의 살 곳을 함께 고민해준 수 많은 동물들이 있었고, 기꺼이 자신의 등판을 내어준 거북이가 있었다. 이후로부터 이 섬의 모든 생명은 서로를 위한 선물과 배품, 심지어 노동과 희생까지도 무릅쓰며 서로를 풍성하게 만드는 존재로 살아왔다. 인간마저 예외가 될 순 없었다. 토착민들이 가진 삶의 태도는 결국 이 믿음 안에서 결정되어 있었다.

서구의 자랑인 이성과 합리성이 수많은 생명을 대상(관찰과 연구 혹은 판매와 거래)으로 취급할 때 ‘토박이 지식’은 생태적 순환 속에서 연결되어 존재하는 모든 생명을 이야기했다. 서구 전통은 인간을 지고무상의 존재로 여겼으나 토박이 지식은 인간을 곧잘 ‘창조의 동생’으로 일컫는다. 그러나 키머러는 결코 이성과 합리성의 세계를 이야기하는 서구의 과학을 포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토박이 지식을 더 잘 설명할 도구로서 서구의 과학이 얼마나 유용한지 알려준다. 지독한 탐구의 정신이 향하는 방향이 달라진다면 얼마든지 우리는 새로운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테니 말이다.

키머러는 에세이 형식의 글을 통해 우리에게 끊임없이 토박이 지식이 가르쳐준 생태적 관계를 아름답게 그리고 과학적(합리적, 이성적으로) 설명한다. 옥수수와 콩, 호박을 함께 심을 때 일어나는 일 같이 말이다. 옥수수는 길게 대를 세워 자라나고, 그 줄기를 따라 콩 넝쿨이 자라나고, 호박이 바닥에 깔려 자라나는 과정에서 콩은 옥수수대를 따라 자란 덕에 바닥을 기어 다니는 동물들의 먹이로 전락할 위험이 줄어들었고, 호박은 바닥에 넓게 자리 잡아 토양의 수분을 보존하고, 해충의 침입을 막아 옥수수와 콩을 지켜주었다. 콩은 대기 중 질소를 토양에 공급하는 역할을 맡아 옥수수와 호박이 자라는데 도움을 주었다. 토착민들은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알고 심은 것은 아니었으나 셋을 세 자매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수 만 년을 그렇게 농사짓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식물학자의 눈에 그 지식은 놀랍도록 과학적이다. 뿐만 아니다. 연어들이 회유할 때 토착민들은 거대한 무리의 길을 인도하는 역할을 자청하기도 한다. 곶에 불을 피워 유도등을 삼는다. 그들의 거대한 무리가 지나간 이후에야 고기잡이를 시작하여 부족의 굶주림을 해결했다. 산란을 마친 연어의 사체는 숲의 나무들에게 질소를 공급하는 귀한 역할을 담당했다.

키머러가 들려준 수많은 이야기들은 결국 ‘호혜성’의 원칙으로 이어진다. 근대가 자연을 대상화하고, 혹은 착취할 때 우리는 자연을 죽은 존재로 이해하곤 했다. 살아있는 존재로 대할 때 그들을 착취하는 것은 윤리적 고뇌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살아있는 존재의 생명력을 지우고, 물질로 대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지금 우리가 놓여있는 위기의 태반은 그러한 인식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렇기에 호혜성은 그 관계의 위기를 벗어나는 중요한 단어가 된다. 우리에겐 서로가 필요하다. 그리고 서로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줄 수 있는 존재로 사는 삶이 우리의 수많은 문제를 고칠 것이다. 그리고 사고 팔지 못하는 관계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는 것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임준형(기독교환경운동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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