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영도에 위치한 흰여울교회입니다.

신앙의 자리/신학마당

"저도 넷플릭스 참 좋아하는데요."

minkyo 2022. 2. 14. 11:43
주간 평화교회 88호| <생활성서> “저도 넷플릭스 참 좋아하는데요.”

성경말씀 : 또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고전 13:2, 새번역)

 

    어느덧 연말입니다. 코로나가 언제 끝나려나, 하는 마음으로 1년을 버텼지요. 그동안 가까스로 부여잡던 삶에 대한 의지는, 그제부터 터져 나온 ‘오미크론’ 확산 뉴스를 보면서 일순간에 무너지기도 했습니다. 작년에는 ‘신천지’를 그렇게들 원망했었는데, 오미크론 사태 속에서 이제는 그런 이야기를 하지 못할 입장에 처하게 된 ‘정통 개신교’의 상황이 참 딱합니다. 주님의 자비를 바랄 뿐입니다.

    이 와중에 잘 살아보려고, 좋은 목회를 하려고, 틈틈이 독서를 열심히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저의 지난 1년은, 많은 책과 씨름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늘 그렇듯, “내가 정말 아는 게 없구나”를 깨닫게 해주는 책들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제게 독서란, 제 마음 깊은 곳에 꿈틀대는 교만함을 억눌러주는 좋은 도구입니다. 책의 끝장을 덮을 때, “아, 이제는 내가 엄청 똑똑한 사람이 되었구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동안 ‘무엇을 모르고 있었는지’를 확인받을 뿐입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제 마음의 빛깔이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책을 통해 무언가를 새로이 알게 되었을 때, 그 자체가 반갑고 즐거운 것을 넘어,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을 정죄하거나 답답해하는 순서로 자꾸 넘어가던 시절도 있었다는 뜻입니다. “아니, 어떻게 그것도 모르지?”라고 말입니다. 정말 우습게도, 저도 불과 몇 시간 전에, 혹은 몇 주 전에 책을 읽고 알게 되었을 뿐인데도 말이지요. 결국 바울의 말처럼, 책을 통해 얻은 저의 지식은 ‘사랑’과 무관했고, 그런 의미에서 그 지식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글을 끼적이고 있지만, 여전히 누군가와 대화 중에 ‘가르쳐주고’ 싶은 마음이 꿈틀댈 때도 있습니다. 혹은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저런 소리를 하나” 싶은 마음을 들게 하는 사람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정말 ‘진정한 독서인’이라면, 무엇보다 기독교 신자라면, 그때야말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순간이라는 생각을 이제는 하게 된 것입니다. 그 짧은 순간에 스스로 물어야만 합니다. “나는 지금 이 사람을 사랑하는가”라고 말이지요. 제 느낌이지만, 많은 독서가들이 이 지점에서 거의 실패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알게 된 지식을 도무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답답하고, 심지어 미워 죽겠는 것이죠.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그들은 독서하는 이들의 ‘과거’를 살고 있을 뿐입니다. ‘아직’ 모를 뿐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도 책을 읽지 않았으면 결코 몰랐을 사실을, 그들이 알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매우 침착해야만 합니다. 내가 소유한 지식이 아무리 긴급한 사안이어도, 상대가 아무리 내 기준에 모자라 보여도, 그를 향해 침착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면, 그 마음은 사랑이라고 보기 어렵지 않을까요? 그렇게 치열한 독서를 통해 차곡차곡 쌓아올린 우리의 지식은, 사랑에 기반 하지 못한 질타를 통해 허무하게 무너져 버리고 맙니다. 정말이지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지울 길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 똑똑한 사람도 많고, 책 읽는 사람도 많은데 발전과 진보가 더딘 이유들 중 하나가 바로 이러한 지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다들 아는 것은 많지만, 사랑이 없어서 말이지요.

우리의 독서가 진정 세상을 고치고 섬기는 일에 귀한 재료가 되길 바란다면, 최소한 답답해하는 것을 들키지는 말아야 할 겁니다. 책 좀 읽는다고, 아는 것 좀 있다고 타인을 답답해하는 것을 그가 알아차리는 순간, 게임은 끝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감정적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자존심을 무너뜨린 사람의 말이라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인정을 못하는 게 인간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그동안 정말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준 것 같기도 합니다. 지금도 젊지만 20대 시절에, 정말 그런 우를 많이 범했습니다. 답답해도, 섬기는 마음으로 친절하게 알려줄 것을, 하는 생각이 참 많이 드는 요즘입니다. 앞으로 잘 해야겠지요.

    그나저나 저의 지난 1년은 코로나 때문에 힘들기도 했지만, 독서를 통해 유익한 시간으로 채워지기도 했다는 말씀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책을 읽을 형편이 되시는 교인이시라면, 꼭 독서를 취미로 가져 보시기를 권면하고 싶습니다. 저도 목사입니다만, 목사들은 책 읽는 교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 얘기는 뒤집어 보면, 책을 읽는 평신도들에 의해 교회가 바뀔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할 겁니다. 저는 그런 시간이 도래하기를 바라는 사람들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책이 전부는 아니지만, 모든 것의 기초라고 생각합니다. 넷플릭스도 좋고, (저도 어제 재밌게 본) 쿠팡 플레이도 좋지만, 무엇보다 책을 통해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교인들이 많아지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연말을 보내겠습니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글쓴이: 이현우 목사 (생명나무감리교회 부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