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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성서] 담임목사가 되었습니다

minkyo 2022. 2. 23. 09:25
주간 평화교회 94호| <생활성서> 담임목사가 되었습니다.

 

성경말씀 :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행 16:5)

 

    목회를 그만둬야 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깊은 고뇌의 시간 끝에 친구로부터 뜻밖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혹시 후임자로 와줄 수 있겠느냐고 말입니다. 이 참에 제도교회로부터 ‘해방’될까 했는데, 그 뜻은 이루지 못하게 되었습니다만, 그래도 친구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져봅니다. 목회자로서의 수명을 연장시켜 주었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지난 주일까지 세 차례 예배를 인도 했습니다. 아내, 아들, 장모님, 그리고 기존의 교인 한 분과 함께.

 

    담임목사가 되 보니, 그동안 막연하게 들어오던 남의 문제들이 저에게 닥친 실제 상황이 되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가령 월세 납부나 교회 성장에 관한 고민 같은 것들의 무게가 가볍지 않습니다. 엉뚱한 얘기를 하자면, 제가 그렇게 쇼핑 어플을 오랫동안 들여다볼 줄은 몰랐습니다. 예배당 슬리퍼를 하나 고르는데, 100원이라도 더 싼 걸 찾는 제 모습을 발견하며, “아, 역시 내가 담임이 되긴 했구나” 싶었지요. 물론 예전에는 교회 돈을 막 썼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런데 혹시 ‘교회 성장’이라는 어구가 불편한 독자가 계실까요? 앞에서 말씀드렸지만 교인이 한 분입니다. 그마저도 지난주에는 출석을 못하셔서, 본의 아니게 ‘가정예배’를 드렸습니다. 이러한 형편이니, 잠시만 ‘교회성장주의자’로 사는 것을 이해해 주십시오. (참고로 성장의 목표는 다섯 명입니다. 이 정도 목표라면 분명 탐욕은 아닐 테지요?)

 

    제가 맡은 코너가 ‘생활’성서이니, 저의 생활을 하나 더 나누려고 합니다. 그렇게 담임목사 부임을 앞두고, 어느 목사님으로부터 또 하나의 뜻밖의 제안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설립될 ‘감리교 생태목회연구소’에서 함께 일할 수 있겠느냐고 말입니다. 제가 오래 전부터 늘 관심을 가져오던 ‘기후 위기’ 문제를, 교단적 차원에서 대응하려 한다는 설립 취지에 제 마음이 움직여 어렵지 않게 수락을 했습니다. 며칠 전에 창립이사회가 열렸는데 혹시 뉴스로 보셨나요? 당당뉴스, 국민일보 같은 곳에 소식이 올라왔습니다. 어른들이 그득한 단체 사진 귀퉁이에 어색하게 서 있는 젊은이를 보셨는지요? 네, 그 젊은이가 바로 저 맞습니다.

 

    저의 생활 나눔이 독자분들에게 담담하게 읽힐는지 모르지만, 사실 지난 두어 달 동안 몸과 마음이 정말 힘들었습니다. 새로운 목회지 부임과 연구소 설립 준비라는 커다란 일들을 동시에 하는 게 만만치 않았고, 거기에 어린 아들을 돌보기까지 해야 하니 영혼이 피폐해 지더군요. 그나마 급한 일들의 매듭을 겨우 짓고, 지금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 평화교회연구소에서 맡겨주신 글쓰기를 하게 되기까지 나름 폭풍 같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쌀을 씻어 솥에 올려놓고, 아들을 깨우기 전 고요히 글을 쓰는 지금, 문득 ‘하나님의 섭리’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최근 정신없이 살아온 제가, 그 시간의 의미를 돌아볼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이 글쓰기의 시간을 마련해 주셨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그 생각을 하니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마음 한켠에 밀린 숙제처럼 부담으로 남아 있던 이 글쓰기가, 오히려 저를 향한 하나님의 선물처럼 느껴집니다.

 

    저 자신에게 차분히 물어봅니다. 제가 담임목회를 하게 되었다는 말, 그리고 생태목회연구소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말이 정녕 무슨 의미인지 말입니다. 그러자 곧장 늘 마음에 새겨오던 어느 신학자의 말씀이 떠오르는군요. “사회적, 생태적 영성이 없는 교회는 아무리 거룩하게 포장한다 하더라도 일종의 이익집단일 뿐이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늘 가슴에 새기던 문장을 조금 더 자유롭고, 능동적으로 구체화 할 수 있는 기회가 제게 생긴 모양입니다. 월세에 쫓기고, 어느 정도의 교회성장을 꿈꾸더라도, 그것이 결코 교회의 본질을 흐리지 않아야 할 것이라고 다짐해 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제가 목회하는 교회를 이익집단으로 전락시키지 않겠습니다. 특별히 기후 위기 시대에, 물질주의에 편승한 왜곡된 복음을 거룩하게 포장하여 발설하는 우를 범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왠지 그렇게 살아낼 것 같은 조금의 희망이 남아 있으신 모양인지, 하나님이 ‘아직은’ 저를 제도교회에서 쫓아내지 않으신 모양이구나, 하며 혼자 생각해 봅니다.

 

    문득 얼마 전 일이 떠오릅니다. ‘제 구역’에서 전도지를 돌리는 분이 창문 밖으로 보였습니다. 큰 교회에서 나오셨는지, 개척교회에서 나오셨는지 알 길은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 보였습니다. 남의 교회 앞에서 전도지를 돌려야할 만큼 이 땅에 교회가 참 많다고 말이지요. 편의점 숫자보다도 더 많은 게 교회라던데, 저는 왜 그 많고 많은 교회 중 하나를 또 맡게 되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부디 저의 존재가 하나님께 슬픔이 되지 않아야 할 텐데요. 아무쪼록 우리 새하늘교회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무엇보다 차별과 혐오를 동력삼지 않는 교회로 서게 해달라고 간절히 빌어 봅니다. 그리고 한국의 모든 교회가 그런 존재 방식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사람들이 늘 화낼 준비가 되어 사는 것만 같은 우울한 시대에, 교회가 교회다울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의 이런 간절한 소원을 하늘에 계신 분이 꼭 듣고 계시기를 빕니다. 아멘.

 

글쓴이: 이현우 목사(새하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