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틈 빛, 혹은 킨츠키

1.
태양의 일주를 따라서도 달의 일주를 따라서도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 물리적인 시간들이야 작년이든, 금년이든, 내년이든 같겠지만 그 시간 속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는 매 순간들은 다른 의미들이 새겨질 수도 있다. 동일한 시간들을 다르게 볼 수 있는 영성훈련중에 하나가 의식성찰(Examen)이다. 이 훈련은 자신의 일상을 하나님의 시선으로 살펴보는 기도이다. 순간순간을 살아갈 때에는, 그 순간의 일상성에 심드렁하게 지나가거나, 또는 우발성에 압도되어 허우적 되기가 일쑤이다. 이런 일상의 삶을 다른 시선으로 되돌아보면, 새롭게 다가오는 이 순간의 삶을 다르게 반응할 수 있는 자유의 공간이 주어진다.
2.
지난 한 해를 성찰하면서 생활의 변화가 무엇이 있는가를 헤아려보게 되었다. 가장 큰 변화는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녀야 하는 진료과목이 늘어난 것이다. 이식수술 이후로 정기적인 진료과목은 장기이식센터와 신장내과였다. 몇 년 후 류마치스 내과가 추가되었고, 2021년은 안과에서 백내장 추이 변화를, 정기적인 치과 검진과 부정기적으로 정형외과와 피부비뇨과를 다녀야 했다. 한 달에 한 두 번 꼴로 정기 검진을 받아야 하고, 하루에 먹거나, 발라야 하는 약의 개수는 점점 늘어났다. 시간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쇠락하는 것은 이 세상에 모든 만물의 이치이다. 쇠락하면서 닳아지거나, 금이 가거나, 깨지는 체험을 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3.
그렇게 기도를 하던 도중, 10여년 전에 조이스 럽 수녀의 [내 인생의 잔]이라는 책을 가지고 함께 영성훈련을 한 기억이 있다. 그 책의 부제는 ‘영적 성숙을 위한 안내서’였으며, 이에 걸맞게 자신이 아끼는 컵을 내면 세계의 상징으로 삼아 매일 25분씩 6주간 기도할 수 있도록 안내한 책이었다. 그 책으로 기도하기도 하고, 소그룹으로 몇 차례 인도하면서 마음에 인상깊게 남아있었던 ‘깨진 잔’에 대한 안내가 떠오른 것이다. 조이스 럽 수녀는 깨진 잔을 통해 고통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가 좌절과 고통을 쓰라리게 겪을 때 그것들을 우리에게 교훈을 주러 온 손님으로 맞아들인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부서진 상황 속에 약간은 꾸물대며 남아서 그 시간을 성장할 기회로 삼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기도드려보는 건 어떨지요?여전히 결핍되고 불완전한 우리 인생에서 우리 인생의 잔의 깨진 조각들을 통해 우리가 배우게 되는 건 무엇일까”
4.
처음에는 낡아지고, 깨지고, 부서지는 것도 괴로운 일인데 이를 손님으로 맞아들여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심한 저항감이 일어났다. 하지만 시간을 두고 기도하면서 상처를 외면하고, 모른 척하고 싶고, 없던 일로 되돌리려는 노력이 더 큰 고통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을 깨단하게 되었다. 고칠 수 있는 것과 고칠 수 없는 것을 분별하여, 되돌릴 수 없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게 될 때 새로운 것들이 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음유시인 레너드 코헨은 되돌릴 수 없는 고통을 송가(Anthem)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Ring the bells that still can ring 여전히 울릴 수 있는 벨을 울리세요.
Forget your perfect offering 그대가 드린 완벽한 제물은 잊으세요.
There is a crack, a crack in everything 모든 곳에는 갈라진 틈이 있고
That's how the light gets in 그 틈을 통하여 빛이 들어온답니다.”
5.
코헨의 ‘틈 빛’에 대한 노래는 상처와 고통을 통하여 어떻게 새로운 희망이 싹틀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되돌릴 수 없는 것들을 깊이 묵상하게 될 때, 나에게 남아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돌아보게 한다. 이렇게 깨어진 조각들의 묵상은 일본의 도예 기법인 킨츠키(Kindtsugi)로 연결되었다. 킨츠키는 깨진 컵이나 그릇을 옻이나 송진으로 붙이고 금이나 은가루로 복원하는 도예 기법을 말한다. 컵이나 그릇의 깨진 모습이 숨기거나 안 좋은 것이 아니라 킨츠키를 통하여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재창조된다. 킨츠키로 재탄생된 컵처럼 우리 인생의 깊은 상처와 고통도 외면하지 않고 오랫동안 지켜보고 그대로 받아들이게 될 때 생명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감사로 변화될 수 있다. 하나님의 은총은 그렇게 주어진다.
글쓴이: 김오성 목사 (한국샬렘영성훈련원)